▲ 박준호(청년국악인)

 “고생 많았어”, “해남의 희망이 보인다”, “너희들과 함께해줄게”, “다음을 기대할게”.
해남청년이간다 공연 후 듣게 된 격려의 말이다. 
국악인 박준호, 인문협업가 김성훈, 영상미디어 예술인 명예찬 셋이서 준비한 ‘해남 청년이 간다2 우리문화 더하기’ 공연이 막을 내렸다.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에 무엇을 더할까? 항상 고민한다. 그 답은 사람과 공간이었다.
우리가 만드는 무대는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연자와 관객이 모두 함께 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바쁜 일상 속에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아름다움을 잇는데 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이 있다. 지역민이 청년들을 대해주는 격려와 응원 그리고 따뜻한 눈빛이었다. 우리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 문화를 지켜주었기 때문 아닐까. 그 문화의 그늘에서 뒷세대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앞서 깎은 인고의 전통과 내일에 더해줄 정신이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까.  
그런 시선으로 우리 지역을 둘러봤을 때, 안타깝게도 지역 청년이 주도적으로 문화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이런 청년의 어려움을 알고 행사를 위한 공간과 제반사항을 해남문화원에서 도움을 주었다. 그 공간에 전시한 50여 점 사진액자 속의 청년의 모습과 공연 속에 청년의 모습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나면 우리의 문화가 된다는 것을 알게 했다. 더해서 청년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우리가 고민하고 디자인한 새로운 해남 문화를 함께 해주었다.
문제는 일회성이 아니라 영속성을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것이다. 예술적 기량이 뛰어난 사람만 문화를 만들고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역 문화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혼자만 잘하는 무대는 사람이 찾지 않는다. 사람 없는 공연장은 더 이상 문화 공간이 아니다. 
이번 북평 어르신들과의 합북 공연으로 판소리 스승이신 박지윤 명창에게 칭찬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르신들과 북치는 것이 좋았고, 노래 부르는 것이 즐거웠다. 어르신들의 북치는 모습과 오랜만에 제자의 판소리를 감상하며 스승은 내게 해남에서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스승의 칭찬에 겸연쩍어졌다. 왜냐하면, 내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모습은 온전한 내 것이라 하기에 망설여지기 때문이었다.
원래 무대에서 한명의 고수가 창자의 소리를 좌우한다. 그러나 나에겐 그날 여섯 분의 어르신들이 합북으로 고수를 해주었다. 추임새와 절제된 북가락으로 나를 비롯한 해남 청년을 응원해 주었다. 또한, 응원은 북평 어르신들뿐만 아니었다. 공연 안팎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역 어른들도 관심을 표명해 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연무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일 청중, 이 고수, 삼 명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관객이 첫 번째요, 반주자가 두 번째이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가수가 세 번째라는 말, 이 말인즉, 관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함께 누릴 지역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공연의 끝에 모두가 함께 부른 아리랑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공연 시간이 왜 이렇게 짧냐고 관객이 물을 때에도 싱글벙글 공연을 주최한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요컨대, 더 확장된,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기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일궈지길 바란다. 우리 지역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울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그 첫 번째가 청년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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