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지 우(시인)

해남은 가히 ‘시의 나라’, ‘시인의 땅’이라 할 만하다. 해남에서는 발에 걸리는 게 시인들이다.
그가 어느 날 그의 시집『바람의 사원』을 ‘여럽게’ 놓고 갔길래 누워서 뒤적뒤적 읽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벌떡 일어났다. 하루에도 두, 세 권의 시집들이 전국에서 배달되어 오는데…,   나는 시 자체가 나로 하여금 읽게 만드는 그런 시집들만 남긴다. 
김경윤 시집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다. 그는 나 같은 게으른 독자를 빨딱 일으켜 세우는 시의 벌침 같은 것을 도처에 돋운 채 자신의 사원으로 우리를 유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나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에서, 그리고 오늘날 이른바 서울 중심의 문학 지형 속에서 김경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바람의 사원』 앞에 서면 마치 자동문의 장치처럼 시가 저절로 열리며 우리를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나는 이 시집 도처에 내가 시로써 대결했던 비슷한 승부처에 김경윤도 밧줄을 걸고 매달려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정도리 바닷가에서의 한나절’을 인용해본다.

마음이 후박나무 그늘처럼 어두운 날이면 / 바람처럼 기별도 없이 훌쩍 정도리에 간다 / 모난 돌 하나 없는 동글동글한 몽돌들 /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참선 중이다 / 적막한 바닷가에 철석철석 등을 치는 죽비소리 / 각진 마음이 자꾸 늑골 사이에서 삐걱거린다 (이하 중략)

이번『슬픔의 바닥』은 읽다가 몇 번인가 원고를 접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슬픔이 당사자의 것이었고 그 슬픔은 그 누구도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독침에 맞은 듯 잠시 마비 상태에 빠져버렸다. 얼얼하고 얼어붙는 듯한 멍한 상태에서 간신히 들려오는 그의 언어들은 ‘시란 궁극적으로 울음이다’는 명제에 도달한 듯이 보인다. 시인은 시를 쓰고 나면 자신만의 고유한 ‘사적인 것’들을 보편화시킨다.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은 어버이로서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슬픔의 절대적 심연에서 그가 절절하게 토해내는 것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 자들이나 그런 경험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명하는 우리 모두의 레퀴엠이다. 그러므로 이번 그의 시집은 어쩌면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모두의 보편적 슬픔에 받쳐진 것이며 김경윤은 모두를 대신해 울어주는 자, 대곡자(代哭者)라 하겠다.
가슴속에 저런 시커먼 심연을 가진 자로서 시인 김경윤은, 그러나 평소에 놀랍도록 고요한 평정심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에 들어가 치유 프로그램이라도 받아야 할 듯도 한데 그는 일체 내색하지 않고 늘 덤덤하다. 늘 웃는 듯한 잔주름 진 그의 눈매는 한없이 자애롭다. 아마도 저 눈빛으로 그는 40년 가까이 학생들을 바라봤으리라. 다만 그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무슨 말인가를 둘이 나눠놓고도 그 뒤 혼잣말로 자세하게,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고산문학상 운영에 있어서도, “뭐는 요렇게 하고, 뭐는 통폐합하고, 또 뭐는 머시기 한데, 그거는 선생님이 거시기하면 될 같고” 등 한참이나 혼자서 더 구시렁구시렁 하는 거다. “이봐, 김 선생. 당신은 꼼짝없이 꼰대야!”라고 말하면 그는 “그게 어디 갑니까?”하고 또 그 자애로운 주름진 눈매를 더 늘린다. 
이 구시렁 선생을 만나 함께 지낸 지 1년이 된다. 
지금쯤에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교수님’이나 ‘총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도 고맙다. 그런 만큼 김경윤은 침범할 수 없는 교육자로서의 격이 있다.
오늘은 그가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직에 나서 고향땅 해남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구시렁구시렁대며 노심초사했던 35년을 마치고 마지막 교문을 나가는 날이다. 어찌 이 긴 세월을 성스럽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국어 선생님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초지일관 우리 해남을 ‘시의 나라’, ‘시인의 땅’으로 성립시키고자 김남주문학제, 고정희문화제, 고산문학축전을 도맡아 추스리고 있는 그의 노고와 헌신에 우리 모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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