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처 입은 나무도 곡식도 가을꽃들도 용하기만 하다. 이렇게 가을은 결실을 맺기도 전에 시련부터 먼저 왔다. 그러나 농촌은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같은 희망을 품고 또다시 한해를 반복한다.
예술도 농사와 같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공연은 불과 한두 시간 안에 막을 내린다.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공연을 준비했어도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막을 내린다. 그리고 공연자들은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또 다른 희망을 품고 또 다른 공연, 또 다른 한 해를 준비한다.
화가들은 매년 혹은 수년 동안 그림농사를 지어 단 한 번의 전시를 열기도 한다. 농부가 농사일 하듯 매일매일 그림 그리고 추수하듯 전시회를 열어도 농부의 수확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기가 다반사다. 예술가들은 이렇게 스스로의 역량으로 문화예술의 기초 생태계를 이룬다.
예술가의 예술 창작물이 공연 전시 출판의 형태로 결실을 맺고 수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행촌문화재단의 일이다. 우리에게는 예술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자원이다. 예술가들이 예술로 꽃피고 열매 맺도록 하는 일이 우리의 목적이다. 창작으로 나온 예술작품을 대중에게 아름답게 선보이고 문화자원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교육으로 다음세대로 전통을 형성하는 일. 예술가뿐 아니라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문화예술 일꾼들이 일하고 교류하는 일터와 활동할 플랫폼이 되어주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을 통해 지역문화가 형성되고 지역의 문화자원이 생산된다.
그러나 이 일은 농사와 달리 치명적인 난제가 있다. 재원은 필요하나 가시적 생산성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천문학적인 문화 예산을 쓰고도 당대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10년 후 30년 후를 위한 나무심기이다.
국공립기관은 모든 재원이 국고보조다. 수익을 내라는 압력을 받기는 하지만 수익을 내는 곳은 전혀 없다. 수익보다 공공의 향유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립기관들은 간혹 수익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훨씬 더 적거나 처음부터 거대 자본이 투자된 상업적 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에 한정돼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100년 전 가장 전위적이었던 문화를 선호한다. 지금 이 순간 갓 태어난 예술은 의미와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일까? 혹은 낯설어서일까? 자연의 생태계가 무너지면 인류가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듯이 문화예술생태계가 무너지면 예술도 문명도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때문에 국공립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문화예술기관들도 공공재원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조금이라는 형태로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져있다. 문화예술 생태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그물망 같은 역할을 한다.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재원은 100% 모두 국비 혹은 지방비가 투입된다. 100%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의미이다. 민간기관은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50:30:20이 황금비율이다. 50은 공공보조금, 30은 인건비와 공공요금 운영비와 같은 자체예산 그리고 나머지 20은 입장료 수익이나 기부금과 같은 민간재원이다. 그러나 황금비율은 단지 희망일 뿐 대개의 민간기관은 사업비마련에 고심이다.
해마다 이맘때부터 문화예술계는 다음해 예술농사를 위한 전쟁과도 같은 바쁜 시기를 맞이한다. 일 년의 문화예술농사를 갈무리하고 보고서도 만들어야 하고 내외부 평가도 받아야 하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준비도 해야 한다. 모든 생태계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물과 햇볕과 양분이 필요한 것처럼 예술을 이어가기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재원 마련을 위한 각종 사업공모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남의 문화로 풍요로운 2020년이 되기를 기원하며 행운을 모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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