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상금(전 서울시의원)

 나는 독서의 달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김훈의『남한산성』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역사공부는 물론 남한산성에 다녀왔으며 인터넷 검색도 했다.
남한산성의 가장 큰 특징은 행궁(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경우 거처 하는 곳)이 있는 유일한 성으로 그 안에는 나라를 상징하는 종묘와 사직이 있어 임시 수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을 되살려『남한산성』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재미있고 흡입력이 있었다. 그런데 남한산성으로 쫓겨 피난 간 행궁 어전회의에서마저 주화파 최명길 대감과 척화파 김상헌 대감의 불꽃 튀기는 말싸움 행태가 마치 지난번 국회 법무부 장관 청문회 모습과 너무 흡사한 데서 느끼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읽을 수 없었다.
청군에게 한양 도성을 버리고 쫓겨 간 남한산성의 행궁에서까지 권력욕에 사로잡혀 당권싸움에만 골몰하는 대신들, 시대착오적인 외교정책에 편승한 무능한 임금의 모습에서 오늘의 정치 현실이 겹쳐져 안타까움이 더했다. 
특히 47일간의 성내 비참한 삶의 모습은 작가의 뛰어난 필력으로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소설속의 인물은 인조 임금을 비롯해 영의정 김류, 이조판서 최명길, 예조판서 김상헌, 병조판서 이성구와 적장 청태종 홍타이치와 그의 부하 용골대 등 모두가 조선실록에 기록돼 있는 실존 인물이다. 작가는『남한산성』을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실존인물 때문에 역사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저자의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마치 녹취록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고 유려하면서 함축적인 문장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또 임금과 신하 혹은 신하와 신하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또는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가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고 허실 없는 간결한 문장에서는 하중을 느낄 수 있다.
『남한산성』에는 투항한 뒤 패배자의 조정에서도 주화파와 척화파의 권력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원리와 현상이 다르지 않고 현상은 원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조선시대 체면 존중의 성리학이 영혼과 육신에 젖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47일간의 항전이라고 하지만 숨죽이고 엎드려 있다가 먹을 것 없어 도망하는 군졸과 백성을 붙잡지 못해 인조는 1637년 1월30일 눈보라에 꽁꽁 얼어붙은 송파나루 삼전도에서 청태종 홍타이치에게 무릎 꿇고 ‘삼배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의 예를 갖추고 항복함으로 주권을 빼앗기는 능욕을 당했다. 
이때 청은 형제의 맹약을 깨고 군신 관계를 강제함으로 이후 조선은 청일 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망할 때까지 250여 년 동안 청나라 속국의 수모를 면치 못한다. 그리고 치욕의 역사 유물이 된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 사적 제101호, 높이395cm, 폭145cm)는 그날의 한을 안고 송파구 삼전동 주택가 공원에 말없이 서 있다. 
예나 지금이나 되풀이되는 우리나라만의 슬픈 역사의 종지부를 위해 나는『남한산성』을 우리국민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수학문제 방정식에서 미지수x의 값을 구한 후 정답인지 여부를 대입시켜서 확인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정답이 무엇인지 소설『남한산성』을 대입시키면 알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는 우리가 마치 겪은 것처럼, 본 것처럼 서술한 작가의 능력 때문으로 패망국 조선의 백성 곧 우리 선조들이 감내해야 했던 수모와 치욕의 참상에서 역사의 쓸모, 소설의 쓸모, 독서의 쓸모를 깨달았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나는『남한산성』을 모두 읽고 난 후 다시 남한산성을 찾아 남문을 지나 서장대에 오르며 이끼 낀 성벽돌을 만질 때는 선조들이 흘렸을 피눈물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서장대 위에서 멀리 보이는 송파나루는 인조임금이 무릎 꿇고 이마를 찧던 꽁꽁 얼어붙은 눈보라 치고 까마귀 우는 황량한 벌판이 아니었다. 빌딩숲사이로 우뚝 솟은 123층의 제2롯데월드의 아련한 모습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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