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권 철(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고산 윤선도의 글과 그의 증손자 공재 윤두서의 그림은 우리나라의 글과 그림을 대표하는 빛나는 문화유산이다.
이는 우리 국민모두가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윤씨 집안의 자랑이다. 이에 고향 해남군에서는 매년 고산문학축전과 공재문화제가 열린다.
금년에도 제19회 고산문학축전이 11일부터 12일까지 연동 고산유적지 일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공재문화제는 지난 9월 21일 생가와 묘지가 있는 현산면 백포에서 치러졌다.
그런데 지난 7월 15일 자 광주일보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강진 칠충사를 기억하자’라는 장문의 칼럼이 호남지역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윤씨 가문의 또 다른 아주 특별한 정신유산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석무 이사장은 칼럼 서두에서 “호남은 분명히 충신·열사들의 본고장이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그 뒤의 수많은 국난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사람이 가장 많은 지역이 호남이다”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보성선씨의 오충사 그리고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화암사에 배향된 해남윤씨 가문의 칠충사 내력을 자세히 소개했다.
또 뉴스 통신사 광주 연합뉴스 TV의 손상원 PD는 8월13일 10시30분 뉴스에서 “한 고을, 한 가문 일곱 충신의 역사·…강진 칠충사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화암사의 영상과 함께 해남윤씨 가문의 일곱 충신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강진 칠충사에 배향된 일곱 충신에 대해 강진 사람도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나 역시 일곱 충신의 후손이지만 해남윤씨 중앙종친회장을 맡고 나서야 종친회 사무실에 비치된「화암사지」에서 처음 알았다.「화암사지」 기록에 의하면 순절한 일곱 충신은 아주 가까운 한 집안 일곱 사람이 전쟁 중 순절하자 결혼한 지 수개월에 불과한 새댁 장흥위씨가 여자의 몸으로 50리 길을 찾아가 앞치마에 남편과 시가 집안 어른 네 분의 머리를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칠충사 비문에는 ‘충절문. 해남윤씨 칠충비. 열부 장흥위씨 행적비’라고 쓰여 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전쟁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함은 후손된 자들의 정치적 힘의 부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호남에 대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푸대접 때문이 아닐까, 해남윤씨 중앙종친회에서는 신문에 발표된 글과 방영된 영상물을 복사해 종친회에 등재되어 있는 600여 명의 후손들께 송부했다.
중앙종친회장 자격으로 임원들과 이런저런 현양 사업 추진과 함께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유관 기관에는 의견을 적극 개진키로 했다. 아무튼 모두가 꼭 기억할 일은 사가들의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는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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