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길이 아름다운 가을이다.
결코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가을 길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대흥사 가는 길, 일지암 가는 길, 달마고도, 고천암 억새 길, 배추밭이 펼쳐진 평범한 들길마저도 아름답다. 지난 일요일 달마고도 힐링 축제가 있었다. 금강주지 스님도 뵐 수 있었다. 언제나 한결같은 미소가 불법이라 느껴지는 주지스님께서는 요즘 ‘길’을 만들고 계신다고 한다. 혼자 걷는 길이라고 하신다. 걸어서 없는 길을 만드는 것이냐고 여쭈니, 낫과 곡괭이도 사용한다고 하신다. 보통 일은 아닌 듯 짐작된다.
길은 본래 없었다. 처음부터 있었던 길이 얼마나 될까? 여름 한 철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면, 사랑스럽던 오솔길은 사라진다. 일 년 지나면 그곳에 길이 있었는지도 몰라보게 된다. 길은 누군가 처음 그곳을 걸으면서 생긴다. 달마고도는 오래전 달마산 곳곳에 있던 열두 암자로 난 길을 고지도를 참고해 복원했다. 산티아고보다 더 오래된 수도자의 길이다. 처음엔 낫을 들고 걷고, 삽과 곡괭이로 돌을 고르고 흙을 다져서 만든 길이다. 없던 길을 만드는 일은 우선 걸어야 한다. 낫을 들고, 풀을 베어가며 걸어야 한다. 없던 길을 가려면 가시덤불에도 찢기고 도깨비 풀이 달라붙고 땀이 나면 모기가 달려든다. 날카로운 가지에 몸이 찔리고 덩굴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새삼 미황사가 달리 보인다. 30년 전 미황사는 오랫동안 비어있어 대웅전 한 채만 밀림에 갇혀있었다고 한다. 돌아온 스님들이 덤불을 걷어내고 나무를 잘라내고 계단을 정비하고 불사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왕래해 오늘의 미황사를 갖췄다고 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미황사의 옛 모습으로는 상상도 되지 않지만, 스님들의 마음의 길 때문이라 생각된다. 마음의 길을 따라 30년을 걷다 보니 오늘 미황사를 만난 것이 아닐까 한다. 주지스님은 우리에게 꽃길을 걸으라 하신다. 그러나 처음부터 꽃길이 어디에 있을까? 가시덤불을 오가며 발자국을 남기고 풀을 눌러주고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돌을 고르고 웅덩이를 비껴가다 보니 아름다운 꽃들이 하나둘 자리 잡고 향기 나는 꽃길이 되는 것이다. 다만 마음의 길을 잊지 않고 매일 습관처럼 오가다보면 그 길이 꽃길이 될 것이다.
20대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충고였다. 절망을 견디고 보니 등에 날개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진부하게만 생각됐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아름다운 미황사도, 힐링 된다는 달마고도도, 대흥사 가는 길도 모두 누군가의 ‘마음의 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길은 어디에도 없다
앞쪽으로는 진로가 없고
뒤쪽으로는 퇴로가 없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김훈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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