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천(전 교사)

 금년에 구입한 다이어리(diary)의 1월1일 첫 칸에 ‘당신의 버킷리스트 1순위는 무엇입니까’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생뚱맞게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날에 버킷리스트라니…’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은 중세 유럽에서 자살이나 교수형을 할 경우 목에 줄을 맨 다음 딛고 서 있던 양동이(Bucket)를 발로 찼던 관행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그 행위가 죽음과 관련이 있기에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목록이라는 뜻이지요.
문장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해 동안 삶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살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정진하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스웨덴의 공동묘지 중 하나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오늘은 내가 여기 공동묘지에 죽어 누워 있지만,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의미입니다. 이 짧은 경구(警句)가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묵히 전합니다.
사람은 평소 죽음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뿐 호주머니 속의 낡은 지갑처럼 죽음을 지니고 다닙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버킷리스트의 삶이 아닐까요?
‘인생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노벨상 수상 작가 로망 롤랑이 그의 대하소설 ‘매혹의 혼’에서 한 말이죠. 리허설이 없고 재방송이 없는 것이 인생이지요. 흘러가는 물처럼, 떠도는 구름처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철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입니다. 그리고 끝내 머물 수 없는 것이 삶입니다. 자동차는 고장이 나기도 하지만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않고 세월 앞에서 우린 속절없습니다. 거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있고 또한 슬픔이 배어 있지요. 그 아름답던 오드리햅번도 시간 앞에선 주름진 할머니가 되었으니까요.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나 ‘터미네이터’나 ‘백 투 더 퓨처’처럼 미래와 현재, ‘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여행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독일의 시인 실러는 ‘시간은 세 가지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저하면서 다가오는 미래, 화살처럼 날아가는 현재, 그리고 멈춰 서서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과거가 그것이다.’라고. 성경에서는 인생을 비유하기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다고 했으며 정호승 시인은 부싯돌의 불꽃처럼 짧다고 했습니다. 또, 붓다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제행무상 불방일정진(諸行無常 不放逸精進-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이라 했던가 싶습니다.
2020년, 우리 모두에게 8,760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관대하지 않을 것이며 생각보다 훨씬 짧을 것입니다. 마치 어릴 적 보리밭 사이를 헤집으며 굴렁쇠를 굴리다 보면 금방 한나절이 지나고 어머니의 ‘밥 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면 굴렁쇠 굴리기를 끝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시간은 인정머리도 없이 우리를 끌고 갈 것이지만 ‘날마다 버킷리스트’를 생각하며 산다면 가능성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
금년엔 평범한 일상 속의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꿔가며 살아가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꿈이 이뤄지고 근사한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훗날 지나온 시간을 들춰볼 때 밑줄 그은 날들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기적보다 살아갈 기적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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