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성 훈(청년 작가)

 부모님 댁의 출입문 잠금장치를 바꿔 드렸다. 내가 군에 복무하던 2005년 무렵 우리 가족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이 있었다. 주머니에 묵직한 열쇠를 더 이상 지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열쇠가 없어 집 밖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가족 구성원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면 잠금 바가 해제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악수를 하는 것처럼, 출입문 레버를 돌리고 개선장군처럼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집안으로, 집 밖으로, 등 퇴장의 시작과 끝점이 출입문 잠금장치였다. 
약 14년 정도 우리 집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것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 건전지를 교체해도 예전만큼 경쾌하게 잠금 바가 해제되지 않았다. 

 손이 닿아 칠이 벗겨진 출입문 장금장치는 그대로 우리 집의 역사였다. 대학 학부생 시절 자취를 할 때 어머니가 조리한 반찬 택배 박스가 이곳에서 출발했고, 귀촌 후, 내가 읽고 연구하는 책들이 이곳을 거쳐 들어왔다. 결혼 후, 분가를 이곳에서 시작했고, 아들을 품에 안고 손에는 영아용 흔들의자, 젖병·기저귀 등을 담은 가방을 들고 이것을 통과해 부모님을 뵀다.
만남과 헤어짐의 관계에 있는 분기점이 출입문 잠금장치였다. 공기처럼 익숙해, 이것이 탈이 나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불편함은 새로운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관계가 어그러졌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새해 해남논단에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 때문이다. 삶에서 어그러진 건강에 관한 염려는, 어느 순간 우리 지역에도 전파되고 있었다. 증폭제가 됐던 말은, 광주마저 뚫렸다는 뉴스였다. ‘브루투스, 너마저!’와 같은 심정이었다. 믿었던 것의 배신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이를테면, 돌잔치를 취소하고, 광주 병원에 가는 예약 날짜를 수정하고, 가급적 터미널이나 마트 등 불특정 다수가 유동하는 곳에는 가지 않겠다는 말이 신년 인사라면 어색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의 화두는 코로나에서 시작해서 대인기피로 결론을 맺고 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섰을 때, 사회는 혐오의 광기에 사로잡힌다.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경우, 그것이 집단화  되었을 경우에 염려되는 징조가 주요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가령, 확진자의 수를 마치 스포츠 경기 득점을 알리는 것처럼 하는 행위, 특정 지역을 언급한 ‘우한 폐렴’이라는 표현, 코로나를 빙자한 각종 범죄 양상에 대한 보도 등이 그러했다. 정작 본질은 사라지고 코로나를 통한 천박한 저널리즘 광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언론의 역할이라면 불안을 소거하고, 우리가 놓친 방역 시스템의 개선을 공론화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 주소가 칠 벗겨진 출입문 잠금장치라면, 불안을 신봉하는 맹신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수련하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가짜 뉴스를 고르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점을 알려주며 공포의 확산을 막자. 개인이 그러하다면 지역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할까. 좀 더 적극적으로 군민이 불안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코로나에 관한 정확한 정보 자료를 제공해주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카뮈의 소설인 <페스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언뜻 보기에 오랑은 사실 하나의 ‘평범한 도시’로서 알제리 해안에 면한 프랑스의 한 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해서 도시 자체는 못생겼다.” 카뮈가 소설 배경으로서 제시한 이 도시는 실제로 못생긴 모습을 보였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각자의 이기적인 욕망이 얼크러져,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상상 가십 공포’에 대해 에둘러졌기 때문이다. 말인 즉, 우리 귀로 들어오는 출입문 잠금장치를 바꿔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고, 민관의 적극적 정보공유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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