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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몰라도 당당한 삶, 조합장도 꿈꾼다
조아름 기자  |  5340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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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6  16: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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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장사, 봉고기사까지
화산면 방축리 배영심

   
▲ 가난 속에서도 손발을 의지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배영심씨는 인생의 후반기에 새로운 꿈을 꾸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품 팔아서 홀로 열두 식구 먹여 살렸던 어머니. 자식들 입에 곡물이 들어가도록 부단히 노력했던 어머니의 인생은 딸의 삶에도 배어 있다. 
화산면 방축리 배영심(59)씨는 어머니 이야기로 그간의 인생을 회상했다. 그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자식들에겐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며 “내 손발에 의지해 열심히 살다 보니 오늘 같은 날이 왔다”고 말했다.
송지면 금강이 고향인 배씨는 10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는 이웃집에 품을 팔아 쌀 한 되, 보리 한 되를 받아 10남매를 키웠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배씨는 초등학교 2학년 중퇴로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았다.
화산면에서 곡물 장사를 하던 남편을 만났지만 논 한 평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 벌어 먹고사는 인생을 살았다.
아들이 3살이 되자 무거운 마늘 포대를 들어 올리는 고된 상차작업을 4년간 했다. 또 우슬재에서 10년간 고구마 장사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구마를 팔았다. 
배씨는 긴 세월 착실하게 저축하면서 만평 넘는 땅을 샀고, 그 땅에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배씨는 농번기철이면 새벽 3~4시에 일어나 무안, 영암으로 봉고차를 운전한다. 한글을 몰라도 억척스런 생존력으로 면허를 땄고 들녘을 누비며 봉고 기사 일을 하고 있다. 
이름 세 자만 쓸 줄 알았지만 어디서도 부끄럽지 않았다. 인생을 떳떳하게 당당하게 살았고 일 잘하는 야문 사람으로 통했다. 어머니를 잘 모셔 화산면에서 효부상도 받았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남들이 하는 ‘휴대폰 문자 보내기’를 해보고자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아들이 가르쳐주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나가 동급생들을 찾아 재미있게 공부하고 싶단다. 또 화산농협 조합장도 꿈꾸고 있다. 
배씨는 “초등학교를 안 나와도 한글을 몰라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옛날에 워낙 고생을 많이 했지만 내가 손발로 노력해서 이만큼 인생을 이뤄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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