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영 자(해남우리신문 발행인)

 국내 최대, 세계 최대, IMF 금융위기 이후 각 지자체마다 세계 최대를 외치며 커다란 건축물 짓기에 바빴다. 
나라가 혼란할수록 건축물을 포함한 각종 조형물은 예술성보단 크기를 강조한다.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발현. 통일신라 말과 고려 말, 혼란 속에서 탄생한 조형물들이 대표적이다. 그뿐인가. 군사독재 시절에 탄생한 이순신 동상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아닌 성웅으로 미화돼 버린 이순신, 그래서 이순신은 풍전등화 앞에서 느껴야 했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보단 언제나 큰 칼 옆에 차고 호령하는 이순신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인문시대가 오면서 크기보단 인간 내면을 담으려는 움직임이 건축물에서도 나왔다. 
이러한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한 것이 울돌목에 서 있는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 동상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진도에 서 있는 이순신은 여전히 호령하는 이순신이다. 진도군이 전국에서 가장 큰 동상이라고 자랑하는 그 동상 말이다.
그런데 우수영 명량대첩공원에 높이 18m, 폭 8m의 거대한 이색대첩비가 들어섰다.
우리나라 이순신 동상 중 가장 작은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 동상이 서 있는 곳에 명량대첩비를 본뜬 거대한 이색대첩비가 들어선 것이다. 
예술혼이 없는 건축물, 감응이 없는 불편한 건축물을 명량대첩 공원에서 우린 또 만난다.  
해남군에 필요한 것은 경관디자인에 대한 자문영역이다. 
해남군은 그동안 땅끝마을에 소원의 종을 비롯한 소원을 상징하는 손, 한반도 지도 등 조형물 넣기에 바빴다. 
땅끝이 갖는 고유한 이미지, 땅끝경관이 갖는 특징을 무시한 채 땅끝을 상징한다는 조형물을 욕심껏 넣다 보니 땅끝은 감응이 없는 곳으로 전락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해남군은 다시 땅끝마을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위한 용역에 나서게 됐다. 
울돌목에는 명량대첩해전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전시관은 해설의 공간이다. 숱한 정보를 얻는 학습의 공간이다. 그렇다면 전시관 밖은 비워야 한다. 오롯이 인간 이순신을 만나고 울돌목이라는 자연을 만나는 공간으로 있어야 한다. 예술품이란 여운이다. 공간에 시설을 가득 넣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응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동안 울돌목 바닷가에는 서바이벌 체험장 일환으로 청소년 병영체험시설물이 들어서 있었다. 바닷가에 서 있는 흉물스러운 시멘트 건물, 그 자체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을 철거하자니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을 것 같아 탄생한 것이 그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색대첩비이다. 
바닷가에 서 있는 거대한 탑, 뒷산의 스카이라인도 잘뚝 가린다.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보면 진도대교 라인도 가린다.

▲ 우수영 명량대첩공원에 서 있는 높이 18m, 폭 8m의 거대한 이색대첩비

 이색대첩비 4면에는 판옥선과 명량대첩비 비문, 필사즉생 필생즉사 문구 등이 새겨져 있다.
해남군은 우수영 관광지 일원을 관광지화 하기 이해 해상케이블카에 이어 판옥선 전시체험시설과 울돌목 스카이워크, 울돌목 출렁다리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색대첩비를 본 순간 덜컥 겁이 앞섰다. 제2의 땅끝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 빈 땅만 보면 무언가 넣고 싶은 욕망, 그러나 예술혼이 없는 조형물은 흉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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