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시게 푸르른 사월이 되면 노란 리본이 참 미안해집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던 6년 전 사월, 시간이 지나도 노란 리본이 되어 참 많이 아프게 합니다.
세월호의 친구들에게 죄스러웠고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어른이란 이름으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날, 부모란 이름이 참 부끄러웠던 날. 그날이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지난 9일 영국 BBC방송은 코로나19와 맞서고 있는 의료진들을 향해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입은 부상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도덕적 신념과 가치를 위반할 때 생기는 아픔, 환자들의 생사 앞에 좌절하는 의료진에게 주어진 이름표.
어디 코로나 사태로 부상당한 이들이 의료진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겠지요.
사실 이 도덕적 상처는 이미 2014년 4월 대한민국 온 국민이 입은 상처였습니다.
채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우린 코로나19를 통해 또 다른 도덕적 상처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 상처가 사실 많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오늘 감사합니다. 이 도덕적 상처로 아파할 수 있음에.
영화 <시>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타인이 죽었음에도 웃는 손자와 그 손자의 잘못에 가슴을 짜는 도덕적 상처로 아파하던 할머니를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상처 입음이, 아픔이 있음이 오늘 더욱 값집니다.
올 사월은 유난히 눈부시게 푸릅니다.
잔인하게 끝매서운 바람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온라인 개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또 국회의원 선거로 우린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상으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마스크가 부담스럽고 답답했듯이 어색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생활 속에서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덕적 상처.
배움이 방식이 달라지고 학습의 내용이 변한다 해도 도덕적 상처를 느낄 수 있는 도덕적 신념과 가치, 타인을 향한 가슴 뜨거운 사랑을 가진 아이들로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자라길 기도합니다. 또한, 새롭게 선출된 국회의원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아픈 대구·경북에 전해지는 사랑과 정성을 보며, 전심을 다 해 질병과 싸우고 있는 최전방의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 감사하는 많은 이들, 코로나로 취약한 우리 이웃을 향해 끊임없이 전해지는 사랑의 관심을 보며 상처를 어찌 치유할 수 있는지 아는 우리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기회가 그래도 위로하는, 위로받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의 가족들, 단원고의 친구들, 구조자들, 코로나19로 인해 죽음의 슬픔을 겪는 가족들, 실직과 생계의 어려움에 처한 이들, 지친 의료진과 공무원들, 새로운 교육환경에 애쓰는 교육자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도덕적 아픔이 위로받는 사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