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 해남 여기저기에도 일본이 남긴 잔재는 남아있다. 굴절된 역사, 돌이키기 싫은 역사이지만 그것도 우리의 역사이기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해 역사적 교훈장소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편집자 주-
해남에 일본 정원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곳, 화산 해창주조장의 정원은 일본 정원의 진수가 그대로 묻어있는 우리지역 유일한 곳이다.
1913년 일본인 사업가가 직접 조성한 이곳 정원은 일본인들의 정원문화를 읽을 수 있는데다 조성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창주조장 정원은 바위와 거목, 연못, 언덕과 산, 교목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대 일본인들은 바위로 둘러싸인 곳에 신이 살고 있고 울창한 나무숲은 신의 울타리, 연못이나 도랑은 신사의 울타리로 여겼다.
따라서 일본의 정원은 신과 인간 세계와의 연결을 정원에 집어넣었는데 이는 산 정상에 우람하게 서 있는 바위나 거목, 하천 등의 자연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해창주조장 정원도 바위를 중심으로 산과 언덕, 울창한 나무들로 구성해 일본인들의 정원문화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일본식 정원은 우주의 축소판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과 강의 자연적 경관을 축소해 만듦으로서 제한된 공간 안에 자연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화산 해창주조장 정원에도 후지산을 표현한 둔덕이 있다. 정원 한켠에 둔덕을 쌓고 뾰족한 바위를 세우고 우람한 나무를 심어 후지산을 형상화했다. 또한 정원을 빙 둘러 군데군데 둔덕을 만들고 그곳에 나무를 심고 바위를 넣어 언덕을 형상화했다. 평지에 정원을 조성했던 우리의 정원문화와 달리 해창주조장 정원은 산과 언덕 등을 표현했고 숱한 바위 등을 넣었다.
또한 나무 수형 하나하나가 분재작품을 보듯 빼어나 일본의 조경예술이 잘 드러난다. 자연그대로의 나무가 정원수였던 우리문화와 달리 나무 하나하나를 조형작품으로 만들고 감상했던 일본의 정원문화가 그대로 묻어나는 예이다.
이곳의 정원수들은 400년을 훌쩍 넘은 배롱나무에서부터 소나무, 향나무, 편백 등 작품 아닌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자태가 빼어난 나무 사이사이에 있는 바위와의 조화도 일품이다. 바위도 웅장하기 보다는 그냥 걸터앉아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자연석이어서 보기에도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해창주조장 정원은 단순히 감상대상이 아닌 정원 속에 앉거나 거닐 수 있도록 해 자연과 인간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담고 있다. 이 정원은 이끼정원이라 불리고 있다. 정원 바닥을 가득 메운 이끼들로 인해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처음 정원을 조성했을 때부터 이끼를 심었다고 한다.
이곳 정원은 1913년 정미소를 운영했던 소전이라는 일본인이 조성했다.
소전은 자연석을 곡식과 맞바꿔가며 사들였고 자연석과 정원수 간의 조화를 고려해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바위 하나, 나무 하나, 소품 하나하나를 철저히 조형예술에 맞춰 조성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정원과 함께 해창주조장도 이때 지어진 집이다. 지금은 원형이 많이 변했지만 2층 계단은 100여 년 전의 모습이 잘 살아있고 사면에 조성된 창과 미닫이 문, 신전을 모신 공간 등이 일본식 건물임을 보여준다.
현재 이 집은 4년 전에 오병인·박미숙씨 부부가 사들여 살고 있다.
박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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