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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졸졸졸 흐르는 게 아니었다. 낮 동안 무수히 많은 풍경과 그림자와 사연을 실어 나르느라 고단했던지 개울은 밤들어 골골 코고는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소리만이 아니다. 서로 하나처럼 어깨를 걸고 흘러가는 물이지만, 가운데의 여울은 물가에서 나는 소리와 다르다. 문태홍(45·두륜중 교사)씨는 물소리가 꼭 학교 교실 같다고 말한다. 목소리 큰 놈과 뒤로 처져 조용한 놈이 뒤섞인 교실처럼 개울도 가운데는 큰 소리, 물가쪽은 들릴락말락한 작은 소리가 함께 난단다. 큰 소리 말고 작은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란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일야구도하기에서 밤중에 들려오는 물소리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면서, 밤중에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유는 캄캄한 밤에는 눈이 무용지물이라 모든 감각이 귀로 쏠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장된 큰 몸짓에 현혹되지 말고 눈을 감으라.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 가장 낮은 곳을 채우려 하는 물처럼 작고 하찮은 것에도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은 인간의 상처만큼 깔린 자갈과 바위를 어루만지며 둥글게 둥글게 타고 넘는다. 차차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는 나무와 그럴수록 가로등 불빛에 또렷해지는 나무들이 또 하나의 경계를 긋는다.
문 교사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내와 손잡고 걷는 이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란다. 다리 난간에 서면 그저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단다. 어둠 저편에서 물이 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아무 생각도 없단다. 피안의 세계에 들기 위해서는 세속의 것을 털어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일까.
대흥사 피안교에 가면 물소리에 씻겨 속세의 잡념도 흘러간다.
박태정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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