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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읍 금강곡 명물이 된 용병선 씨. 365일 흥겨운 가위춤을 추며 산을 오르고 있는 용병선(62·해남읍 남외리) 씨는 이제 각종 무대에 서는 주인공이 됐다.
22년째 금강곡을 오르며 엿가위춤을 추는 용 씨는 엿가위 등산맨으로 통한다. 그의 등산 조끼 주머니엔 언제나 카세트와 엿장수들이 쓰는 엿가위가 들어있다. 그러나 엿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엿장수도 아닌데 산에서 엿가위는 왜 들고 다니는지, 매일 가위춤을 추며 산을 오른다는 용 씨는 지난 7일 명량대첩 수변무대에 섰다. 이날은 문내농협과 THE술래가 마련한 문내조합원을 위한 공연 자리. 그는 이날 관중들에게 멋진 엿가락 춤을 선보였다.
용 씨의 엿가위 춤은 정형화 된 틀이 없다.
22년 전 엿가위 춤을 시작할 당시 그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본인 스스로 깨친 춤이다. 흥에 겨워 춘 것이 지금에 이른 것. 그러나 용 씨만의 박자와 리듬이 있다.
한손에 두 개씩 네 개의 가위를 들고 리듬을 맞추는 그의 어깨는 상하좌우로, 다리는 언제나 한발만 들어 올린다. 그리고 들어 올린 다리 사이로 양손의 가위가 번갈아 가며 교차하는 것이 그의 엿가락 춤이다. 흥이 절정에 달하면 가위로 땅바닥을 치고 이때 보는 이들도 흥겨움에 빠진다.
용 씨에겐 두 벌의 엿가위가 있는데 한 벌은 동네 고물상에서 구입했고 한 벌은 우연히 놀러간 부곡 온천에서 샀다. 부곡에서 엿가위를 발견한 순간 심봤다를 외쳤단다.
워낙 귀한 물건이다 보니 아내 몰래 슬쩍(?)한 화장품으로 매일 닦고 닦아 광택이 흐른다는 용 씨의 엿가위. 용 씨와 엿가위 춤과의 인연은 아픔에서 비롯됐다.
지난 198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와 뇌를 크게 다친 용 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걸음걸이와 말투까지 어눌하게 됐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엿가위춤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다시 사는 삶인 만큼 작은 재주지만 지역민들을 위해서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용 씨는 희망원과 선혜요양원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자신의 재주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공연을 하겠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엿가위춤을 추는 그가 다시 그려진다. 김희중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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