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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막걸리 기울이니 내가 너로구나
버드나무 고목과 소나무 그리고 대나무에 둘러싸인 연동의 연방죽, 고요한 밤 달이 뜨면 달빛과 한낮의 열기를 이겨낸 산야초의 풀냄새와 짝을 찾는 풀벌레 울음이 스러진 연꽃의 공허를 대신 채운다.
가끔 빽빽한 연잎줄기 사이를 오가는 비단잉어들의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늘 같은 솔잎 사이를 지나오느라 가느다랗게 갈라진 여린 바람이 끈적한 목덜미를 살며시 스치고 지나간다.
동쪽 하늘에 뜬 열이레 물기 머금은 이지러진 달이 밀물처럼 가슴으로 밀려온다. 이십대 초반 말도 걸어보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게 했던 그 여인도 어디서 저렇게 이지러지고 있을까? 나이는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먹는 것일까? 연방죽 섬에 앉은 달밤 이슬 머금은 풀잎처럼 가슴이 촉촉해진다.
그림을 그리며 해남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우성(40) 씨는 작품이 끝나고 나면 이곳에 들른다. 그의 작품 세계는 군중의 거친 삶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하나가 끝나고 나면 마음까지도 몹시 황량해진 느낌이라고 한다.
연방죽 섬에 앉아 흙탕물 위에 피어난 고운 연꽃을 바라보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면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먼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단다. 인가의 개짖는 소리도 멀어지고 머리가 텅 빈 순간 눈을 뜨면 온통 쏟아져 들어오는 초록의 물결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그는 연꽃을 바라보며 마시는 술은 막걸리가 제격이란다. 흙탕물 위에 피어난 연꽃의 고운 꽃잎처럼 그의 몸에 들어간 탁한 술은 영혼을 걸러내고 다시 일상에서 버틸 힘을 준단다.
특히 이곳은 연꽃이 필 때도 좋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을 달밤이 제격이라고 한다.
스러진 연잎 줄기 사이로 내려오는 달빛과 까실하게 말라가는 풀들이 올려내는 향긋한 풀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연방죽에서 막걸리로 가슴을 정화해 보자.
박태정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