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 번 화장실 가볼라고 해보쇼. 얼마나 심란헌지”
해남에서 유일하게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계곡면 황죽마을(이장 김영철) 사람들의 새해 소망은 다름 아닌 수세식 화장실 한번 사용해 보는 것이다.
33가구에 70~80대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마을은 방이나 부엌은 그럭저럭 현대식인데, 화장실만큼은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마을에 하수도가 아직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
지난해 하수도 공사를 한다고 해서 모두 희망에 부풀었는데 마을회관 앞까지만 해놓고 마치는 바람에 주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란다.
회관에 모여 한가롭게 놀던 할머니들에게 화장실 이야기를 꺼냈더니“워매 올해는 어떻게 안됐깨라”하며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실제로 할머니집들을 방문해보니 집집마다 놋요강이나 스텐리스 요강이 모두 비치돼 있다. 박난심(78)할머니는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파 쪼그려 앉지도 못해 지팡이 짚고 올라가 줄을 잡고 용변을 본다며 용변 보는 상황까지 연출한다.
한쪽에서는 동네 우세시킬 일 있느냐며 만류하지만 자진해서 재래식 화장실을 공개하는 건 상황의 절박함이리라. 살아생전 수세식 화장실 덕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할머니들.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면 멀수록 좋다는 말은 옛말이 됐고 저승길과 변소길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할머니들의 말 속에 수세식 화장실의 간절함이 묻어나 있었다.
합수통 퍼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할머니들의 새해 소망은 다름 아닌“군수님 2010년에는 꼭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였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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