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에서 야간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과 1년 동안 문화마실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문화 속으로 놀러 가자’라는 뜻으로 매주 한 편의 영화나 공연을 함께 감상하는 것. 자신의 소감을 한 줄 쓰기로 정리하고 또, 그 내용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 바로 문화마실 시간에 이뤄지는 일이다.
영화를 선택하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 친구들이 보지 못한 영화,앞으로도 찾아볼 일 없는 영화. 그러니 매번 맛없는 영화가 이들 앞에 놓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을 자는 친구도 있고, 재미없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이 시간을 기다리고 어떤 영화를 선택해도 마음부터 닫는 일이 사라졌다.
작년 한 해 이리 찾은 보석 같은 영화 중에 인도 영화들도 몇 편 있었다. 인도영화를 처음 본 친구들은 “에이”로 시작했지만 그 잔잔한 감동과 빠지지 않는 인도적 코미디요소에 빨려 들어갔다. “또 인도영화예요!” 하면서도 화면에 고정된 눈빛이 기대감을 나타낸다. 그 인도 영화 중 <스탠리의 도시락>은 보는 내내 유쾌한 웃음을 짓게 했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릴 머뭇거리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인 ‘긴급재난지원금 기부’를 보면서 <스탠리의 도시락>을 생각했다. 유례없이(?) 대통령부터 시작한 기부 선언은 신청 시 버튼을 잘못 눌러 서둘러 기부를 취소한다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한단다. ‘실수 기부’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나눠주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누군가가 강요에 의해 억지로 얻어내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어른 베르마는 얘기한다. “남의 거 먹지 말고 네 도시락을 싸 와. 너 땜에 내가 먹을 게 없잖아.” 나에게도 이런 맘이 들 때가 많다. 사실 이런 마음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럼에도 성경은 얘기한다. ‘밭에서 곡식을 벨 때 한 뭇의 밭을 잊어버리거든 다시 가져오지 말라.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라.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신명기 24장 중) 그리고, 우리의 까치밥, 까마귀, 까치를 위해 감나무의 감을 남겨두는 그 마음.
점심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주인공 스탠리, 하지만 매일같이 도시락을 나눠줄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베르마(감독 겸 배우)가 그려낸 이야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스탠리는 멋지게 도시락을 싸 온다. 그리고, 어른 베르마의 도시락도 준비한다. 베르마는 스탠리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을까?
영화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은 그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눌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난 확신한다. 그 누군가의 남겨둔 배려의 한 조각을 만져본 우리 아이들은 반드시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남겨둘 것이란 걸. 어른된 우리가 서둘러 그들에게 땅따먹기 과욕의 선긋기를 가르치지만 않는다면 우린 스탠리의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에겐 김남주 시인이 옛 마을 지나며 느꼈을 조선의 마음이 여전히 있으니.
<옛 마을 지나며>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