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루살이 같은 삶, 내일이 보이지 않는 삶이라도 분명히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하물며 큰 나무뿐만 아니라 작고 하찮은 풀 한 포기까지도 사연을 가지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란 말은 나무사회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린 주변의 녹색 빛 여유로움을 주는 나무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 각박한 우리 삶에 작은 위안도 얻는다.
백합의 백자는 흔히들 흰백(白)으로 알고 있지만 일백백(百)을 쓴다. 뿌리가 백여 개의 비늘줄기로 구성돼 있다 해서 붙여진 한자 이름이다. 또 빨간꽃이 대표적인 동백은 왜 ‘백’이라는 한문이 붙어있는지? 동백의 백은 측백나무백(柏 또는 栢)으로 다소 어울리지 않는 뜻의 한자를 쓴다.
굳이 설명하자면 겨울철 푸른 잎을 유지하는 나무라는 뜻이다.
동백이라는 한자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며 꽃과 열매가 많이 달리는 형태가 다산을 상징한다고 해 전통혼례에 동백나무 가지를 사용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개(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미끈한 갈색 수피를 가진 나무를 보고 이렇게 예쁜 나무에선 어떤 열매가 맺힐까 궁금해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는데, 가을에 열린 못생긴 열매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고 한다.
홧김에 베어 내려다가 문득 열매 향을 맡았는데 그 달콤한 향기에 또 놀라고, 옳다구나 싶어 한입 깨물었다가 그 떫은맛에 펄쩍 뛰며 또 놀랐다. 이렇듯 모과나무는 모양에, 향기에, 맛에 세 번 놀란다는 말이 꼭 따라 다닌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포개고 잠을 잔다. 재미있는 건 잎들마다 서로 맞닿아 짝을 이루는 특성 탓에 옛날엔 자귀나무를 신혼부부 집에 선물하기도 했단다. 사람들은 봉황의 깃처럼 화려한 꽃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충절을 지키는 공신, 선비의 풍모에 비유돼 왔다. 특히 양반집에서는 회화나무를 심어야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마당 한 곳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정갈하고 대쪽 같은 성격 탓에 잡귀신은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대신(大神)만이 쉬어 가는 나무라 한다.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럽게 벗겨내 그 위에 때 묻지 않은 연정의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일수록 자작나무로 만든 편지가 힘을 발휘한다는 하얀 자작나무는 어느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나무의 여왕’ 그 자체이다.
명자나무의 명자 꽃은 이른 봄에 숨어서 피는 꽃이라고 한다. 꽃이 왜 안 필까 살펴보면 언제 그렇게 피었는지 잎 밑에 가려진 붉은 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에는 그것이 사람 마음을 홀린다해 명자나무를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과년한 딸이 있는 집에서는 더욱이 그랬는데 명자 꽃 모양새를 보다보면 어느새 문밖 출입을 한다는 거다.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나무들은 자기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너무도 잘 터득하고 있다. 남과 비교해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만을 두고 거기에만 충실한다.
한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커다란 정자나무 아래서 식히는 순간, 푸른 열매를 보며 언제 열매가 익을까 기다리는 순간이 있다. 나무는 우리 삶의 작은 쉼터라 생각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 지친 몸을 기댈 수 있게 자신을 내어 주는 그런 쉼터가 아닌가 싶다.
무심히 지나치던 나무들을 새롭게 바라보며, 나무에서 인생을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