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동해안에서 가까운 일본 서부연안도시이자 도야마현 현청이 있는 도야마(富山) 시(市) 모리 마사시(森雅志·68) 시장은 2002년에 취임했으니 올해로 18년째 재임중이다. 연임제한이 없는 일본에 장수 시장들이 꽤 있지만 모리 시장의 장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시 규모가 크거나 부유하지도 않고 고령화, 인구감소에 시달리던 도야마시는 일본 내에선 거의 후미진 시골쯤으로 인식된다. 그런 도야마시가 세계적으로는 ‘최첨단 지방도시’로 알려져 있다. 독특한 도시발전전략과 실행으로 어찌나 유명하던지 모리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강연요청이 쇄도한다. 2005년 이후 모리 시장은 전 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강연과 토론회에 해마다 평균 70여 차례씩 참석한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야마시로 행정시찰을 떠나는 국내외 단체도 엄청나다. 2010년 이후 이곳을 찾는 단체가 매년 400개 이상이라니 놀랍다. 방문자 수로 따지면 한 해 평균 5천 여 명에 이른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야마시가 인구감소와 초고령화 속에서도 ‘콤팩트시티’라는 정책으로 위기를 넘어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엔 OECD가 발표한 ‘콤팩트시티 정책보고서’에서 멜버른, 밴쿠버, 파리, 포틀랜드와 나란히 세계 선진 5개 도시로 평가받았다. 확대일로의 성장주의 정책을 버리고 시가중심부에 사람, 물건, 돈의 기능을 집약시키는 ‘콤팩트 시티’ 정책으로 도시의 질을 바꿔버린 장본인이 바로 모리시장이다. ‘소형 경전차 포트램 도입’ 같은 굵직한 일부터 손자와 외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공공시설 무료입장 혜택을 줘 다목적을 달성한 ‘손자와 외출지원사업’, 지정된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서 경전철을 타면 요금이 무료인 ‘꽃트램 모델사업’, ‘외출 정기권 사업’, ‘외국인 경전철 무료권 정책’, ‘자전거 무료임대’ 등 기발한 정책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구체적인 내용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시라). 작은 마을을 살리고 외부에서 젊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이들이 들어오도록 유인하는 정책들을 만들고, 직제를 넘어 팀을 짜고 토론하는 젊은 직원들을 주축으로 한 행정의 후원이 만들어 낸 사업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모두 모리 시장이다. 그럼 모리 시장은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모리 시장은 임기 초반부터 연휴만 되면 해외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아이디어를 훔치러…. 갑자기 2박4일로 함부르크를 찾는가 하면 포틀랜드, 밀라노, 시애틀, 헬싱키 등 생각 닿는 대로 세계 각지를 다닌단다. 보통의 경우라면, 시민단체들이 나서 세금낭비라며 비판할 것이고, 언론은 비행기 좌석이 이코노미인지 비즈니스인지 취재하고 난리였겠지만, 모리에게는 그런 비판이 없다.
놀랍게도 해외 시찰에 세금을 쓰지 않기 때문이고 다녀오면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기 때문. 그리고 그 여행비는 바로 후원자들이 낸다는 사실. 시장 개인후원회원들은 제발 밖으로 나가라면서 등을 떠민다고 한다. “시장이 세계 각지를 시찰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돈을 댈테니 아까워 말고 돈을 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돌아오시오. 그렇게 해서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을 펼치시오.” 이게 후원자들의 입장이란다.
좋은 지도자에 좋은 시민이 따르는 사례를 보여준다. 좋은 단체장이 나와 좋은 정책을 펴니 도시가 발전하고, 좋은 도시를 만들고 싶은 시민들은 그 시장을 선의로 이용하는 아름다운 선순환 구조다. 그렇게해서 ‘외국 가서 베낀 정책’이 콤팩트시티의 근간을 이루고 도시의 얼굴이 된 경전철 ‘포트램’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단체장의 휴가비까지 모아준다는 현실이 부럽다. 그러나 더 부러운 것은 그런 지도자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을 돌며 좋은 아이디어 가져와 적용해보고,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민간의 실험을 뒷받침하게 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있다는 점이다. 한 지역 발전의 출발점은 지도자이고, 좋은 지도자가 있으면 좋은 시민도 생긴다(반대의 상황도 필요하지만)는 걸 확인케 하는 대목이어서 더 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