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내에서 연극동아리 ‘하쿠나마타타’와 음악프로덕션동아리 ‘갈대상자’ 활동을 중학생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틀 전 이 두 동아리 소개 영상을 유튜브에 링크해 지원사 홈페이지에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하게 됐다. 그래도 나름 기계치는 아니라 컴퓨터를 다루고 활용하는 것이 쉬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생경한 일을 만나니 낯설고 어려웠다. 몇 번의 시도에도 오류가 발생해 당황되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기까지 했다. 급기야 아이들에게 SOS를 쳤지만 잠시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즐기는 금쪽같은 시간에 아이들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에 냉해진 나의 말투와 시선이 불편했던지 한 친구가 마지못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순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들 장원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트는 법을 가르치던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저절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됐다. 리모컨 버튼 하나하나 순서대로 지목해 가리켜 알려줌에도 아버지는 딴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던 장면. 서로 전혀 딴 생각,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던 그 모습. 기능은 더 다양하면서도 조작법은 단순해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경험을 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서로 통하지 않고 분절돼 소통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벽처럼 느껴졌다.
소통,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란다.
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어디 그때뿐이었으랴. 소통되지 않던 경험을 나열을 하자면 지면을 가득 채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현재 우린 지도∙내비∙번아웃∙보어아웃이 공존하는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손바닥 위에 지도를 보며 길을 찾던 세대.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 대표 장면으로 보이던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나사못을 쉬지 않고 조이는 일을 하던 찰리.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일에 몰두하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일하는 번아웃을 경험하던 세대.
목적지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최선의 길로 안내하는 내비, 지루하고 단조로운 것, 반복된 업무, 익숙해지고 능숙해진 것은 재미없고 의욕을 상실해 버리는 보어아웃을 느끼는 세대.
이 두 세계가 맞물려 공존하고 있으니 소통이 쉬울 리가 없는 것이리라.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종이 위에 순서대로 비디오 트는 법을 적어 놓는다.
때론 나의 언어인 지도와 번아웃을, 그들의 언어인 내비와 보어아웃을 서로를 위해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때론 정보 오류로 내비를 연결할 수 없을 때 지도를 펴 길을 갈 수 있음을.
단순하면서도 합리적인 것에 습관처럼 소진될 때까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합리적인 것에 의욕을 상실할 수 있음을 서로 기억하고 알아주는 것. 그것이 소통일 것이다.
오늘도 그들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충돌한다. 그러면서도 소통되기를 꿈꾸며 연습할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서로의 언어가 공존하는 세대를 살고 있으니 그래도 시도할 것이다. 막히지 않고 뚫릴 때까지. 지도와 내비가, 번아웃과 보어아웃이 친한 이웃사촌이 될 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