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코로나 때문에 연중 한 번도 모이지 못한 모임이 있다. 어르신들이 많기도 하지만 위험회피와 방역협조에 다같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1단계 완화조치로 이달 말쯤 모임을 재개키로 하고 집행부 예비모임을 갖자는 제안에 대다수가 기뻐했다. 모두들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얼굴 한 번 보는데 이렇게 설레어 보기도 오랜만인 듯 즐거워했다. 많은 미래 전문가들이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마도 이젠 매월 모이던 친목모임을 1년에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 갈지도 모른다.
처한 위치에 따라 이러저러한 원인분석을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은 아무래도 인간의 무분별함 때문이라는, 소위 ‘인재’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무차별적 개발과 환경오염은 지구 생태질서의 파괴를 가져왔고, 질서가 흐트러진 환경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심각한 경고가 아마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이라는 게 중론이다.
코로나 뿐인가. 올 여름 우리가 겪은 기이한 장마와 태풍들, 전 세계가 겪은 기후재앙들은 모두 그 뿌리를 같은 곳에 두고 있음에 이제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국 21세기는 지속불가능한 세기가 될까? 전 지구적 기후정의운동의 최전선에 선 학생투사 그레타 툰베리의 생각을 빌리자면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게 답일 것 같다.
툰베리는 지난 해 7월 프랑스 하원에서 한 그 유명한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좋은 소식은 세상이 몇몇 사람들이 말해온 것처럼 11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쁜 소식은 우리가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계속 살면 2030년 쯤이면 몇 개의 지구적 티핑포인트, 즉 거대한 변화의 순간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툰베리의 경고는 강력했고, 전 세계는 그 충격에 지금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툰베리의 말대로라면, 잘 만하면 우리가 위기를 벗어날 수도 있지만, 10년을 허송세월할 경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리라는 경고였다. 실제로 그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일상의 만남이 사라지고 인간은 어둠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은 늦었지만 엄청난 의미가 있다. 이미 70개국에서 선언한 일이고 환경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탄소중립목표를 선언하고 실천에 나섰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를 벗어난, 이른바 ‘저탄소경제’ 시대의 본격개막을 대통령이 선언했다, 이제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화석연료 배제나 축소, 소멸에 따라 산업지형이 재편되고 탄소집약적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 축소나 상실, 소득저하, 지역경제의 와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가 미래를 살아가는 데 중요 해결과제로 꼽고 있는 에너지, 식량, 인구, 공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경제 등 모든 과제는 환경문제, 즉 탄소경제체제로 수렴되어버릴 것이다. 탄소경제를 이끌고 가느냐, 끌려가느냐가 생존의 갈림길이 된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 말이 너무 먼 미래의 일처럼, 마치 남의 집 제삿날 정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큰일이다. 특히나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하다. 큰 깨달음의 죽비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또한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 때문이다. 탄소시대의 어설픈 계산법으로, 눈앞의 작은 떡이나 주물럭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공부할 때다. 실천할 때다.
탄소 없이도 돌아가는 사회, 탄소 없이도 경제를 굴리고, 탄소없이 더 잘사는 사회의 밑그림을 먼저 그리는 지역은 소멸을 피할 것이다.
탄소중립, 저탄소 실천과 문제해결의 책임이 꼭 국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 먼저 저탄소시대, 저탄소경제체제를 도입할 때다.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몸집이 가벼워 터닝도 빠르니 위기는 곧 기회다. 답이 없지도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