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숙희/목포과학대 겸임교수
백숙희/목포과학대 겸임교수

 우리의 옛 정원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그들의 욕망과 정신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생활공간이었다.
정원은 민가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그 원형이 남아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벼슬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조성한 별서정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옛사람들은 정원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그것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또 한국정원은 특별히 나무를 다듬고 조형물을 놓지 않아도 아름답고 풍요롭다. 기본적으로 자연 순응적인 조성방식이다. 
조상들은 계절의 변화 또한 자연의 섭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봄에는 잎이 나고 가을이면 단풍들고, 겨울에는 눈이 앉은 낙엽수를 선호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나무들은 정원수로 삼지 않았다. 계절의 리듬을 느끼는 활엽수가 주였고 여기에 약간의 소나무나 측백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했을 뿐이다. 최근 정원수를 인위적인 형태로 만들고 낙엽수가 아닌 사철 변하지 않는 수종을 정원수로 심은 것은 일본정원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정원에는 유교 및 도가사상, 신선, 풍수 사상이 녹아있다. 이러한 선비들의 정신 및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정원의 상징물인 연못과 연꽃, 괴석, 잉어 조각상, 두꺼비, 소나무ㆍ대나무ㆍ매화 등이다. 이중 소나무ㆍ대나무ㆍ매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시화에서도 정원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수목이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물, 대나무는 군자의 인품에 비유되는 강인함과 겸허ㆍ지조ㆍ절개 등을 상징했다. 
또 매화는 흰색을 기본형으로 하고 후각을 자극하지 않는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매화의 생태적 특성이 선비들의 유교적 윤리관과 결합돼 의인화되고 이상화되면서 정원수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전통정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은행나무는 공자와 관련돼 있는 나무다. 유학자들은 공자를 유교철학의 비조로 추앙했으며 공자의 학행과 덕행은 송찬頌讚의 대상이 됐다. 
그들이 정원에 은행나무를 심었던 것도 공자의 행적과 사상을 상기하고 학행의 분위기를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옛 해남군청 앞에 있었던 해남교육청 정문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자리했다. 
초록의 푸름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던 곳, 은행나무 잎 떨어진 노란 길 위를 거닐던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또 겨울이면 장갑 끼고 눈싸움을 했던 곳, 커피한잔 들고 친구와 인생을 이야기했던 기억 속의 장소이다. 
한국정원은 위로받고, 보듬어주고, 마음에 안위를 준다. 이유는 인위적이지 않고 그 자체가 자연이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추억들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정원이란 한정된 부지 안에 미관이나 실용을 목적으로 풀과 꽃, 나무, 돌 등을 인공적으로 배열해 꾸민 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유럽을 비롯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감상할 만한 아름다운 자연이 없는 지역에서 형성된 정원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연경관 자체를 인문적 요인으로 경관화해 정원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속에 조성한 정자가 중심 역할을 한다.
정자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산수 안에 위치하고 있다. 정자는 정亭이라는 글자가 말해주듯 잠시 머무는 장소인데, 산수 안에 머문다는 의미에 더 큰 무게가 실려 있다. 
정자는 사방이 확연히 트여 있어 주변의 자연경관을 막힘없이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옛 사람들이『동국이상국집』에서 “천태만상이 털끝만한 것도 시야에서 도망하지 못하니 무릇 먼 경치를 바라보는 데는 정자만한 것이 없다”라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원문화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 그 속에 정자가 있고, 정자 위에서 자연과 교감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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