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청년 작가
김성훈/청년 작가

 시나브로 얽혀 들어간 하루의 시간이 저녁 7시 때에 머물렀다. 카페 문이 열렸다. 제 등만한 백팩을 메고, 마스크를 쓴 중년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출입자 명단에 ‘공선옥’이라고 썼다. 담양에서 출발해 해남까지 오는 동안 그녀가 봤을 남도의 노을에는 어떤 잔상이 얼룽얼룽했을까. 그녀는 어떤 식으로 소설 작업을 할까 등 이러저러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는 사이 카페의 작은 무대에서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며 자리에 앉았다. 지난 13일, 해남공공도서관에서 주최하고, 박양희 선생이 진행했던 작가 초청회의 주제는 ‘소설가로서 산다는 것의 의미’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문학행사처럼 작가의 내력을 줄줄이 ARS 기계소리처럼 읊는 자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작가의 소설을 읽은 사람보다 읽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고, 아무말 대잔치처럼 “같은 공씨인 공지영은 유명한데 공선옥은 왜 많이 알려지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 없이 사춘기 소녀처럼 발그레 웃으며 ‘모르겠네요’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소탈함이 묻어나왔다. 
‘작가’라는 직업군에서 묻어나오는 무거운 공기 따위는 없었다. 굳이 작가임을 내세울 필은도 없는 자리였고, 그녀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민망함이나 미안함 따위가 있을 필요도 없는 자리였다. 
그 순간 우리는 이웃집 담벼락 너머로 한 사람을 불러 내고 ‘그 사람’의 방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듯, 문학성이라는 것에 관해, 예술성이라는 것에 관해, 딱딱한 이론의 함수에 빠지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향유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자꾸만 자신의 의식 세계로 ‘온다’고 표현했다. 잘난 사람은 뉴스, 신문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다루는데 굳이 자기까지 나서서 그들을 표현해야 할 이유도, 그들을 알아야 할 까닭도 찾지 못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지난해 전라남도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됐고 이미 매스컴에서도 많이 알려진 <은주의 영화>보다, 그 소설집에 수록된 <순수한 사람>이라는 단편이 먼저 떠올랐다.
오명희라는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핸드폰에서 해고통지를 받았다. 하나뿐인 아들은 아빠를 싫어했고, 돈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안다. 해고로 인해 살림이 어려워진 오명희가 선택한 것은 아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남편에게 양육비 소송을 청구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재판에 별다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시골에 사는 엄마를 찾아가게 되지만, 엄마라고 달리 오명희를 도울 방법이 뾰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살림 전답은 다른 자식에게 다 갔고, 그나마 남은 소 역시, 이혼 후 혼자 남은 아들 새 장가가라고 베트남 처녀를 구하는 데 써버린 것이다. 그나마 그렇게 신혼집을 차렸던 베트남 여자는 아들의 불같은 성미에 못 이겨 도망갔다. 길길이 날뛰는 아들을 진정시키느라 쇠력한 노구의 몸을 이끌고 사는 엄마에게 오명희는 더 이상 무엇을 해볼 도리가 없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외지에서 사람들이 오고, 어머니에게 돈을 약간 줄테니 라면을 끓여달라고 한다. 엄마는 그들 외지인이 따라준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고, 딸인 오명희는 그들에게서 라면값 이만원을 받아낸다. 그때 외지인들은 오명희를 보고 “순수한 사람 같았는데, 되게 재밌다”는 말을 한다.
‘순수’라는 단어가 가진 역설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작가 공선옥이 빚어낸 소설의 항로는 대개 이러했다. <명랑한 밤길> 역시 그러했다. 기형도 시인의 <비가2>처럼 ‘누구든 살아있기’ 때문에 빚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그녀의 작품에는 있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작품을 쓰는 서사의 자리나, 그가 독자를 만나는 자리는 견고하고 매끈한 빌딩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푸성귀를 심은 마당의 작은 화단이 보이는 시골집의 풍경이었다. 어쩌면 지역에서 예술을 지역민과 향유하는 자리도 그와 같지 않아야할까를 고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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