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채석장 함께 발견돼 문화재 가치 커
백포만, 신석기~백제까지 3천년간 번성
고대사회 현산면 읍호리는 어떤 곳이었을까. 100여기가 넘는 고분군락지 발견에 이어 200여기에 이른 고인돌이 하나의 산에 빼곡히 밀집돼 있는 것이 또다시 확인됐다.
특히 이곳은 분포된 고인돌뿐 아니라 흔치 않은 고인돌 채석장으로 확인돼 국가사적지 지정도 고려할 만한 가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남군이 문화유산 총서발간사업 일환으로 추진된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이번 고인돌 군락지와 고인돌 채석장은 현산면 성매교차로에서 황산교차로로 가는 국도 13번 북쪽, 읍호리 산21-1에 분포돼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배암골이라 부른다. 고인돌은 1.2㎞ 범위의 산 구릉에 분포돼 있고 가장 큰 고인돌은 610×500×120㎝에 이른다. 또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떼어낸 흔적이 있는 석재들도 다량 있어 고인돌 채석과정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장소가 될 전망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계급의 무덤이다. 이곳에 지배계급의 무덤이 다량 형성돼 있다는 것은 인근에 꽤 큰 부족마을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청동기인들의 주 먹거리는 굴과 조개 등 바다에서 얻은 수산물인데 이번 고인돌 군락지가 발견된 곳은 갯벌이 발달된 백포만 인근이다. 백포만은 해남 인류가 처음 정착한 곳이자 고대사회 선진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해남 문명의 탄생지이다.
백포만에 터를 잡은 신석기인들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더 큰 부족으로 성장하는데 이번 읍호리 산에서 발견된 고인돌과 인근 초호마을 고인돌 군락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백포만의 청동기 부족들은 마한시대에 이르러 국가형태를 띤 소국으로까지 성장한다. 중국사서와 일본서기에 나오는 침미다례다. 침미다례는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마한 29개 소국을 대표하는 나라였다. 29개 마한 소국을 대표해 중국 진나라에 사신을 보낼 만큼 침미다례의 국력은 중국 및 일본에 닿아 있었고 배 건조기술에 이어 항해술도 뛰어났다.
백포만은 백제시대에 이르러서도 중국 및 일본과의 무역항으로, 전남 서남부 중심 근거리로 번창했다. 현산면 읍호리에 백제계통 고분 100여기 이상이 분포돼 있는 점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영산강권 중심지로 나주반남이 번성했듯 백포만은 강진, 장흥, 고흥 등 전남 서남부 거점지역으로 백제시대에도 여전히 번성을 누렸던 것이다.
현산면 읍호리는 이번 고인돌 군락지 발견으로 마을의 앞산과 뒷산, 입구 산까지 모든 산이 문화재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됐다. 다만 대규모 고인돌을 조성했던 세력과 100여기가 넘는 고분군을 남긴 지배세력이 거주한 마을은 어디였는지는 과제로 남겨졌다.
마한문화권 복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마한사 연구 및 복원활동이 활발히 추진될 전망이다. 이에 해남군은 읍호리에서 최근 발견된 100여기 고분군락지를 도지정문화재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지정문화재가 돼야 특별법 제정으로 지원되는 예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해남군은 이번에 확인된 고인돌군락지에 대한 조사 및 장기적인 복원계획도 추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