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미황사 마당에서 펜화작업을 하는데 “점심공양 하시지요” 하는 스님의 말씀이 얼마나 반갑던지. 금강스님이었습니다.
절 앞에 상점하나 없어 점심을 꼬박 굶게 생겼는데 주변머리가 없어 공양간을 찾을 엄두를 못 내고 있었거든요.
점심공양으로 맺어진 금강스님과의 인연이 20년을 갈 줄이야. 참 변함없는 스님입니다.
법당 둘에 쓰러져가는 요사채만 있던 작은 절 미황사를 27동의 당우를 지닌 큰 절로 키웠으니 목에 힘이 들어갈만 한데, 언제나 밝은 얼굴에 위아래 구분 없는 모습이 한결같았습니다.
아무 때나 찾아오는 낯모르는 방문객을 대하시는 모습도 20년 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절은 대찰이 됐는데 손바닥만 한 주지실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허례허식을 멀리하는 스님의 변함없는 마음입니다.
많은 당우를 지으면서 대웅보전의 축대에 쓰인 석재와 똑같은 돌로 옛 방식대로 쌓아 천년고찰의 모습으로 키워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절로 만들었습니다. 이 또한 변함없는 스님의 안목일 것입니다.
어린이 한문교실 50여명 어린이들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스님의 모습에도 감격을 했습니다. 다른 스님에게 맡겨도 될 작은 일들을 직접 챙기시는 모습에서도 한결같은 스님을 보았습니다.
스님이 좋아 템플스테이에 참석하는 분들이 한해 4천명이 넘는답니다. 미황사가 좋고, 스님이 좋아서 미황사는 늘 방문객으로 넘쳐납니다.
펜화를 하려고 전국의 많은 절을 찾고, 많은 스님을 만났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이 금강스님입니다.
20년간 온 정성과 공력을 들여 키운 절을 떠나시는 마음이 어떨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벗고 자신을 위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다고 홀가분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바랑 메고 만행을 떠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없는 미황사는 생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폐사에 가까운 절을 대찰로 키운 스님을 ‘중창조’라 합니다. 이런 경우 주지직이나 큰 스님으로 평생 동안 모시는 것이 사중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어린이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산사음악회 등 종단의 모범사찰이 돼 어느 스님도 흉내 낼 수 없는 큰 공로를 쌓은 금강스님은 해남의 자랑일 것입니다.
미황사 하면 금강스님. 금강스님 하면 미황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