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작년 1년 동안 행안부 주민자치 수석컨설턴트 임무를 수행하면서 해남의 마을들을 공부하고 살피면서 오갈 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날 너른 해남 황토밭에서 배추를 심는 아짐들을 보았다.
지나가는 길손의 관점에서는 낭만이었으나 배추 한 포기를 심을 때마다 허리를 구부리고 수천 번 구부렸다 폈다 했을 아짐들의 허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고 아팠다.
문득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평생을 땅에서 소처럼 일하면서 오직 자식만 위하고 어른들 모시면서 종부의 고단한 삶을 살다 땅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거친 손과 다 닳은 호미가 꿈처럼 아득하다.
울 어머니도 그러했고 수많은 다른 어머니들도 자식이 시골에 남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하고 이왕이면 도시로 더 큰 대처로 나가길 소원했다. 그러는 사이 마을은 텅 비어가고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됐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던 마을 골목은 텅 비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얼마 전 교육부 자료를 보니 ▲서울 2개 ▲부산 44개 ▲대구 36개 ▲인천 57개 ▲광주 15개 ▲울산 27개 ▲세종 2개 ▲경기 169개 ▲강원 460개 ▲충북 253개 ▲충남 264개 ▲전북 325개 ▲경북 729개 ▲경남 582개 ▲제주 32개교로 총 3,843개 폐교 중
전남이 828개교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이 통계를 보면 농어촌이 많은 전남의 경우가 가장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내 아이가 다 커서, 내 손자도 이미 졸업해서 나와 상관이 없다’ 말하지 마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그 순간에도 학교는 소리 없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절벽이 현실이 된 작금에 각 지자체에서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인구 유입과 정착을 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교육과 마을공동체의 상관관계’를 외면하면 백 가지 정책이 다 헛수고가 된다.
농산어촌의 과소화와 소멸 위기에 대처하고 마을공동체를 지키고 공동체성을 복원하려면 단순히 교육청이나 학교 교사만이 학교를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마을이 다 무너지고 나면 학생들이 어디서 나올 것인가? 우리가 학교를 지켜야 하는 까닭이고, 마을교육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산어촌으로 이주를 원하는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조건에 관해 물었다.
그들은 대략 3~4가지를 말했는데 첫째가 주거의 안정, 둘째 적당한 일자리, 셋째 문화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 넷째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주는 각종 정착금이나 지원금보다 중요한 몇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 마을의 일원으로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위 4가지 조건도 함께 수반돼야 젊은 사람들이 우리 지역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단순히 산자수명(山紫水明)하다는 자부심만으로 요새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없다.
2021년 우리 전남의 농산어촌도 우리 해남의 마을도 붕괴 직전 백척간두에 서 있다. 혹자는 내게 ‘누가 그걸 모르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할 때’다. 지역소멸의 현실 앞에서 행정도 주민도 전문가도 힘을 합쳐 거버넌스를 통해 답을 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