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미술관 일을 천직으로 살고 있는 내가 가보고 싶은 미술관은 어떤 미술관일까?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여행을 생각하면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먼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자서 하루종일 멍하고 폭식을 하게 되는 습관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장이 많은 직업이라 국내는 물론 남미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많은 곳을 방문하고 시간을 아껴가며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관람했다.
 미술관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낯선 타국에서 맞은 이른 아침, 미술관에 가면 제아무리 유명한 미술관이라도 한가하고 평화롭다. 전문가 교재에 실릴 만큼 유명한 미술품이 가득 찬 미술관도 계단의 대리석이 깨져있는데 보수할 예산이 없을 때도 있다는 것도 목격할 수 있다. 세계적인 미술품으로 유명한 미술관도 전시장과 수장고 수리 예산확보를 위해 <명화>전시 타이틀을 걸고 수장고 깊이 있던 작품들을 꺼내 해외 나들이를 보낸다는 것도 눈치채게 된다.
 세계 유명미술관도 예외 없이 씀씀이는 헤프고 수익은 거의 없어 기부금과 보조금에 기댈 수밖에 없고 예외 없이 작은 수익에도 고무적인 자신감을 가지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스스로 철든 아이처럼 알아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어디나 아름답고 소중하다. 여행작가나 화가, 기자가 쓴 미술관 기행서적을 읽는 것마저도 좋다. 다른 사람의 안목과 연구를 빌려 미술관을 이해하고 직접보지 않고도 마치 직접 본 듯 선명하게 감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미술관의 작품들에 관해서도 그렇다.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현재 도쿄게이자이대학 법학부교수로 재직했던 서경식교수가 쓴 <고뇌의 원근법>을 단숨에 읽어버리기 아까워서 오랫동안 읽었다. 아름다운 작품 안에 내재 된 깊은 절망과 슬픔을 느꼈지만 그 래도 좋 았다. 필 라델피아미술관에서 느닷없이 만 난 마 르셀 뒤샹 (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년 7월28일~1968년 10월2일)의 거의 모 든 작품을 몹 시 가 슴 뛰게 보며 지식의 욕구를 채운 것 같은 포만감을 느꼈지만 같은 미술관 제일 구석진 곳에 마치 성당처럼 꾸며 진 갤러리에서 만난 사이 톰블리(CYTWOMBLY 미국 1928~2011)의 작품은 깊은 시詩의 우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차갑고 또 뜨거운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2015년 풍류남도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0여명의 작가들이 드로잉한 200여점의 해남을 행촌미술관에 빼곡하게 전시하고 그 어떤 전시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다고 느꼈다. 2016년 1월 해남의 농부화가 김순복의 작품을 처음 만나고 돌아올 때도 그랬다. 해남의 전형적인 농가 창고에서 전시를 해보자고 박미화 작가를 조르고 설득해서 고라니가 키운 콩밭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지만 결국 인생 샷과도 같은 감동적인 전시가 되었고 그녀는 박수근미술을 받았다. 피카소의 고향 스페인 말라가는 인구가 4만정도지만 대학도 있고 미술관, 박물관이 족히 10개는 있다.
 이제 가까운 곳, 내가 사는 곳에서 편안한 운동화 신고 미술관에 가고 싶다. 어느 이른 아침 미술관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해남군립미술관에 가고 싶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갈 때에는 늘 그래던 것처럼 살짝 설레는 마음일 것이다.
 쾌적하고 한산한 미술관에 들어가 농부화가 김순복의 작품에서 해남 향교리 농부들을 만나고 싶다. 인물화를 잘 그리는 김우성 작가의 해남사람들과 박득규 작가의 어여쁜 새가 노래하는 무화과 농장도 보고 싶다.
 소나무와 매화를 누구보다 잘 그리는 조병연 작가의 신작도 보고 싶다.  화가를 천직으로 알고 날마다 그림만 그리며 살고 있는 해남화가들의 그림을 언제라도 볼 수 있는 미술관이면 좋겠다. 그림과 그림 사이를 천천히 걷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를 것이다. 아침 햇살이 잘 드는 밝은 카페에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향기롭고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미술관이라면 무엇을 더 바랄까. 그렇게 소박하고 친절하고 성의 있는 해남을 담은 해남군립미술관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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