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시 의원)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대 명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한 유사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부정된 시대도 없었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혼자가 좋다”라는 집콕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혼밥에 혼술이 유행이다. 코로나 사피엔스라고나 할까.
2년 남짓 계속되는 코로나 팬데믹 방역-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생활화되면서 생각은 물론 행동까지 각자도생이다.
이웃과의 만남을 경계하고 몸은 혼자라야 살길임을 어쩌랴. 추석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추석과 고향은 불가분의 관계라서 귀향을 해야 하는데 금년에도 지난해와 다름없이 마음 놓고 오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추석하면 고향이요, 고향하면 달라진다. 고향의 익숙함 때문에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사춘기 시절의 기쁨이거나 슬픔 혹은 환희였거나 상처뿐인 단순명료한 추억뿐이다.
50년이 넘는 서울살이는 이런 저런 많은 것으로 나를 충족시켜 줬다. 그러나 서울은 결코 고향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고향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고향은 숙명일수 밖에 없다.
대문호 헤르만 헷세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제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조국을 부정하고 스물 둘의 나이에 스위스로 건너갔다.
비록 조국은 등졌지만 독일의 남부 뷔르텐베르크 칼부 고향을 사랑했던 시인은 고향의 익숙함을 이렇게 고백했다.
“고향 칼부의 사람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개나 고양이도 없었다. 모든 빵집들을 알고 있었고 어떤 빵이 진열되고 있는지도 꿰고 있었다. 나무들과 풍뎅이와 새들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또 서울에서 유학 중 6‧25전쟁으로 실향민이 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귀향이었지만 마치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려주고 있다.
“정 회장은 정 회장답게 고향에 갔지만 나는 내 식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 타고 싶다.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때는 일몰 무렵이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이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로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에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고향은 누구에게나 눈물이요 한숨이요 그리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