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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이 가장 큰죄, 부지런한 동네로 알려져
새벽 5시 마을이 소란스럽다. 집이 아닌 하우스에 불이 켜지고 경운기며 트럭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가장 큰 죄가 되는 동네. 읍 학동리의 새벽풍경이자 역사이다.
읍 관동이 묵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는 동네라면 학동리는 채소를 재배해 파는 채소동네다. 마을에 거주하는 74세대 중 50여세대가 이에 종사한다.
학동리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은 어느 것 하나 버려지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의 좌판을 통해 모두 판매된다.
지난 7일 새벽 5시, 이병춘(75)씨 하우스에 불이 켜진다. 요즘 금값이라는 상추작업에 노부부의 손놀림이 바쁘다. 이들 노부부는 매일같이 상추를 경운기에 싣고 매일시장으로 향한다. 상인들에게 넘긴 상추는 2관(7.5kg), 4만원이 손에 들려진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단 한 푼이라도 더 받고자 아예 좌판을 편다. 이들 노부부가 재배해 파는 농작물은 상추와 무잎, 당귀, 들깻잎, 쪽파 등 다양하다.
400여 평의 밭에 갖가지 농작물을 재배해 팔고 철따라 작목을 바꾼다. 학동에선 마늘이 효자종목이다.
이병춘씨도 올해 1500평 마늘밭에서 쫑만 팔아 300만원을 벌어들였고 다른 집들에서도 쫑과 풋마늘로 소득을 올린다.
들녘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돈이 되는 동네. 이 모든 것을 소규모로 시장에 내다팔다 보니 학동리 논밭은 만물상이다.
사람들이 먹은 푸성귀란 푸성귀는 모두 재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소마을로 불러지는 학동의 이러한 풍경은 8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몇 가구에서 푸성귀를 이고 읍 저잣거리에 내다 팔던 것이 전 동네로 퍼져나간 것이다.
따라서 새벽이면 머리에 갖가지 채소를 이고 읍 저잣거리로 향하던 학동 아주머니의 모습은 일상의 삶이 됐고 동네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읍 학동에서 채소작업을 가장 크게 하는 사람은 윤재상(70)씨와 조운하(68), 김승동(70), 이길마(69)씨이다.
이들은 트럭을 이용해 채소를 나른다. 그러나 이병춘씨와 권이리(72)씨는 경운기를 끌고 시장으로 향한다.
속도가 늦은 경운기를 끌고 가야 하니 이들은 먼저 일어나 작업을 해야 하고 먼저 동네를 출발해야 한다. 읍 학동 주민들은 각자 단골이 있다. 또 조금이라도 가격을 받고자 매일시장 상인들과 실랑이도 벌인다.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좋은 자리를 잡고자 새벽부터 좌판 싸움을 벌인다.
수십 년의 경험상 어느 자리가 좋다는 것을 알기에 도시락 지참하고 새벽에 집을 나서 5시면 시장에 도착한다. 해남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고 가장 부지런하다는 학동. 70년대에는 잘 살기 운동을 펼친 모범적인 마을로 사례발표에 나섰던 동네다.
가진 것 없어도 여자가 시집올 때 함지만 머리에 일줄 알면 먹고산다는 곳이 학동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변했지만 학동마을 주민들의 새벽작업과 부지런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박영자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