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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해남종합병원 개원과 함께 30여 년 간 근무하고 있는 천남준(53)씨. 병원건물을 지을 때인 24살에 첫 직장으로 해남종합병원을 선택했다.
개원을 준비하던 당시 나무도 심고 벽돌도 나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의 병원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단다. 천 씨가 주로 하는 일은 보일러 관리이지만 병원 건물 구석구석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도 천 씨이다. 그러나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 우스갯소리를 한다.
보일러 관리는 천 씨를 포함해 두 사람이 하고 있다. 주간 근무가 끝나고 야간에는 이틀에 한 번씩 교대를 하지만 항상 긴장한 채 비상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에는 보일러 관리 때문에 밤에도 2교대로 근무를 해야 한다. 90년대 유류 파동이 났을 때는 값비싼 기름 때문에 화목보일러를 2년여 동안 쓰기도 했단다. 화목보일러는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었고 지하실까지 화목을 나르는 일 또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병원이기 때문에 시설 하나하나의 고장은 환자의 건강으로 이어지기에 천 씨는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근무에 임한다. 비록 한밤중일지라도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대기를 해야 하고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설비가 좋아져 좀처럼 오밤중에 출동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웃어 보인다.
천 씨가 근무하는 보일러실은 건물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보일러에서 나온 물은 건물 구석구석에 온기를 실어 나르는 핏줄과도 같은 파이프라인이다. 지하 보일러실과 비좁은 비트에서 일을 하지만 천 씨는 종합병원의 심혈관계 명의와도 같은 존재이다. 병원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고 말하는 천 씨에게서 진정한 직장인의 모습이 보인다.
병원이 이제는 집과 같다는 천 씨는 병원의 발전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란다. 살뜰히 보살펴 주지도 못한 자녀들이 어느새 자라 큰아들은 굴지의 대기업에, 딸은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런 개인적 보람도 모두 좋은 직장을 둔 덕이란다.
천 씨는 평생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해볼 정도로 무뚝뚝한 성격이다. 그러나 요즘은 막내 학비를 대느라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박태정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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