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이승미/행촌문화재단 대표

 

 ‘연극이 끝나고 난 후’라는 노래가 있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전시도 마찬가지다. 전시가 끝나고 나면, 아름답고 고결했던 전시장은 텅 비고 어수선한 정적을 끝으로 불이 꺼진다. 전시가 끝난 것이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도 끝나고 수묵비엔날레를 기념하는 해남기념전도 끝났다. 많은 예술가들이 개인전을 끝내고 짧게는 몇 주를 앓아눕고, 길게는 몇 년 씩 깊은 우울증에 빠지는 것을 지켜봤다. 
아마도 다가올 겨울은 내게도 진정한 위로가 필요할 것 같다. 다시 봄이 오면 얼었다 녹은 부드러운 땅을 뚫고 새싹을 내는 꽃들처럼 절망을 뚫고 희망의 싹을 틔우기를 바란다. 다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야 할 때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개최 중심지는 목포와 진도이다. 나머지 전남 시군은 기념전 형식으로 참여한다. 그런데 개최지인 목포와 진도에 밀리지 않을 해남수묵비엔날레를 개최해보자는 주장이 올해 전시회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그 덕에 올해 전시회에 참여한 전남 8개 시군도 해남 덕을 봤다. 또 목포와 진도, 목포와 해남, 진도와 해남을 잇는 국제수묵비엔날레 아트투어 루트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단초도 열었다. 
해남에 수묵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을 유치하겠다는 해남군의 의지가 각별하니 말로만 그치지 않고 꼭 그리되기를 바란다. 
올해 전남국제수묵비엔레 중 해남우리신문이 마련한 군민소장품전이 가장 빛났다. 
오랜 세월 아끼고 사랑하던 그림들이 군민소장품전을 통해 집 밖 나들이를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집집에서 나온 그림 한점 한점의 세월과 사연이 공유됐다. 그런 점에서 해남 사람들은 멋진 풍류를 즐길 줄 안다. 군민수묵소장품전은 예술가를 아끼고 환대했던 해남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땅끝순례문학관에서 열린 해남매화전은 해남전시회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행촌문화재단이 매년 전국의 작가들을 해남으로 불러와 해남의 풍경을 그리게 했던 풍류남도아트프로젝트의 결실이기도 했다. 
이때 참가한 전국의 유명작가들은 해남의 풍경에 빠졌고 이때 맺은 인연으로 해남 미황사와 산이매실농원의 매화를 그려왔다. 해남의 매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이었다.  
“모든 일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넬슨 만델라도 그렇게 말했다. 시대담론인 평화와 민주화도 그랬다. 개개인의 삶의 여정도 다르지 않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역시 그랬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2016년 영호남수묵화교류전으로 옹색하게 시작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일부 미술인들마저도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던 사업이다. 
그러던 일이 올해 목포‧진도는 물론 전남의 9개 시군까지 동시에 전남 전체가 ‘수묵’으로 물들었다. 
이로써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수묵’이 새 역사를 쓰게 됐다. 분명 모두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던 일이 이뤄졌다고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인간의 이성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때로 의도치 않게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럴 때 필요한 문구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이다. 
이제 5년의 실험은 끝났다. 또다시 잘 될 것이라는 낙관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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