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바람길 대표)

 

 설 연휴를 보내고 왔더니 택배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명절 전 주문한 책이 도착한 듯하다. 몇 권의 책 중 가장 먼저 꺼내든 것은 ‘천개의 바람’ 출판사의 신간「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하루에도 수차례 코로나 관련 문자가 온다. 코로나는 나의 일상을 변화시켰고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충분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도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이 책은 사람들 간의 온기를 가득 느끼게 해 주었다.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는 백석 시인의 <국수> 시를 모티브로 만든 책이라고 한다. 
책 표지에 인상 좋은 한 남자가 나오는데 그가 백석 시인인가 보다. 참 사람 좋게 생겼다.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어서 자료를 찾아보며 그림책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좋아졌다. 
물론 외모의 훌륭함도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 같아서 더 좋았다.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태도나 까다롭게 시어를 선택하는 것, 그의 사랑 이야기를 보며 백석이 궁금해졌고 마음이 갔다.
백석은 나라를 빼앗기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을 시에 담았다고 한다. 백석의 그 마음 그대로가 이 그림책에 담겨 있었다.
시인과 말똥말똥 밤톨 같은 아이가 따뜻한 눈 맞춤을 하며 함께 그릇을 감싸고 있는 표지부터 책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버지가 장에 간 겨울밤 산골 외딴집에서 잠을 자던 아이가 눈을 떴다. 마당이며, 지붕이며,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부엌에서 찾은 엄마는 국수를 삶으려 물을 끓이고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 누군가가 찾아오고 그들에게 대접할 국수 일 듯하다. 
나는 아버지도 안 계신 겨울밤, 외딴 산골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큰일이지 않나 하며 다음 장을 넘겼다. 겨울밤 산골 외딴집에 눈밭에 길을 잃은 사냥꾼들, 멀리 사는 친척들, 가즈랑집 할머니와 동물들, 흰 당나귀를 탄 아름다운 나타샤와 시인 등 사람들이 참 많이도 찾아온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이들을 아이와 엄마는 반갑게 맞아주고 아랫목을 내주며 피곤함을 위로해 주려 국수를 대접한다. 
글과 그림이 예술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두 작가의 정성이 담겨 사람 사이의 인정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한순간 이런 책을 보며 생각했던 나의 매정함에 뭉클해졌다.
절로 나오는 한숨을 그림책이 위로해준다. 따뜻한 국수 한 그릇 먹으며 몸도 녹이고 마음도 녹이라고. 그러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국수> 시를 다시 보며 온기 가득한 일상을 꿈꾼다. 그러고는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나만의 국수는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