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가 떠나던 날
누렁이는 우리 집 상일꾼이었다
논밭갈이와 운반 수단의 주역이었다
늦가을 동틀 녘
여물방 굴뚝에서 새어나온 연기가
구름처럼 온 마당에 깔려 머뭇거린다
누렁이는 영문도 모르고 이른 새벽에
쌀겨가 수북이 뿌려진 소죽을 먹는다
젖 먹으려다 뒷발에 걷어채인
젖떼기는 울어대고 누렁이는
물렁한 눈망울을 죄 없이 꿈벅거리며
아버지가 댕기는 고삐 줄에 끌려나온다
떠날 줄을 알았는지 지 새끼를 한번 핥아주고
천근만근 무거워 보인 거동은 쓰러질 듯
마구청 앞 감나무에 몸을 부리고
등을 비비며 선잠을 깨운다
갈 길이 멀다고 재촉하며 서성대는 어머니
치맛자락에 쫓기는 마당에
가장 게으른 걸음을 떼어놓는다
딱 한 번 뒤돌아보고
이내 구름 여물 씹듯이 빈 입을 되새김질하고는
작심이나 하듯 뒤돌아보지 않고
비뚤어진 뿔로 허공을 문지르며 간다
한 집안의 살림 밑천이 되어
우음메 우움 음메에
지 새끼 부르며 갔다
서정복/심호 이동주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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