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바람길 대표)
이윤희(바람길 대표)

 

 ‘투둑 투둑 투두둑’ 소리에 깨어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다. 청초한 봄비가 나는 좋다. 
봄비가 내리면 대학시절 생화학 교수님이 생각난다. 
봄비 내리던 날, 이런 날은 강의실에서 수업하기 아깝다며 야외로 나가자던 교수님, 시인이셨던 교수님은 봄비 가득한 날 우리에게 시를 한 편 들려주셨다. 교수님의 시를 들으며 우리는 봄을 맞이했다.
 그때의 교수님은 봄비에 흠뻑 취해서 강의시간 내내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도 야외 수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수님의 낭만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봄비가 내리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마냥 설레게 된다. 
오늘 봄비의 좋은 일은 산불 진화였다. 
사상 최악의 산불로 꼽히는 ‘울진·삼척 대형 산불’의 원인은 차량 운전자가 버린 담배꽁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달리던 차창 밖으로 던진 담배꽁초가 낙엽 위에 떨어져 불이 붙기 시작했고 기후위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건조한 기후 때문에 산 전체가 바짝 마른 장작처럼 타오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산불을 기후재난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불로 인해 많은 이들이 집을 잃었다. 터전을 잃고 멍한 눈빛으로 인터뷰하는 이재민들 표정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나 산불로 인해 집을 잃은 이는 이들만이 아니다.
산불이 태운 면적을 이야기하고 산불이 발생시킨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산에 사는 동식물의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모두 쉴 곳이 필요하지요. 동굴, 둥지, 강, 땅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봄봄 출판사의「집 : 우리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글·퍼트리샤 헤가티/그림·브리타 테켄트럽/옮김·김하늬) 그림책이 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봉오리가 맺힐 때 겨울잠에서 깬 아기곰은 바깥세상이 궁금해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다. 
동물들은 저마다의 꾀로 자연에서 집을 짓고 살아간다. 다람쥐는 잎사귀를 주워 모아 집을 짓고, 비버는 막대기로 집을 짓는다. 
새는 나무에 진흙으로 집을 짓고 살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도 미로 같은 집을 짓고 살아가는 생명도 있다. 
이 세상 다양한 종류의 존재들이 많은 다른 장소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뚫린 페이지들을 통해 숲속 곳곳의 집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며 공간 속의 재미를 찾게 해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나는 아기곰의 시선을 따라가며 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많은 존재들을 떠올렸다. 
산에는 많은 이들의 집이 있다. 자연 어디에나 많은 존재들의 다양한 집들이 있다. 집은 이들의 쉼터이고 안식처이다. 담배꽁초이건 기후 위기이건 우리의 잘못으로 많은 존재들이 집을 잃었다. 집을 잃은 허망함은 사람뿐 아니라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잘못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때이다.
단단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씩 습관을 들이다 보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들의 집을 위해 결연한 다짐으로 작지만 확실한 행동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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