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일신 시인의 해남 피난기
국민동요 <자전거>를 지은 시인은 목일신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릉. 시인은 1950년 7월에 해남을 찾은 일이 있다. 목포여중 국어교사였던 시인이, 해남으로 피난을 내려온 것이다.
해남에 도착한 일행 넷은 여관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주인이 식비를 받지 않았다. 주인 말로는, 피난민들에게 식비를 받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해남에 막 도착했을 때, 반찬은 없지만 자기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권하던 사람도 있었던 터라 가슴이 뭉클했다.
일행이 북평면에 이르렀을 때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P여고 제자 강남순 양을 마주친 것이다. 강양은 뛸듯이 기뻐했다. 일행은 강양의 집에서 2주일을 머문뒤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갈 곳이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는데, 어디선가 "선생님! 선생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이 아니었다. 강양의 아버지 강종옥씨가 이르기를 “선생님이 폐를 끼치기 싫어서 집을 나섰지만, 배도 안뜨는데 어디를 갈 것이냐? 보나마나 오도가도 못할 것이니 눈치 못 채게 뒤를 밟았다가 모시고 오너라.” 하신 것이었다.
시인은 다시 강양 손에 끌려서 강양집으로 갔고, 목포로 돌아가기까지 20일을 더 신세를 지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강남순 양의 어머니가 갑자기 시인의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시인이 북평에 두고 간 짐을 챙겨온 것이었다. 땅을 파고 짐을 묻어두어서 인민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달이 유난히도 밝은 밤이었기에 잊혀지지 않는다는 시인은강양 가족, 특별히 강종옥씨를 “해남의 달빛”이라고 말한다. (자료: 소명출판, 목일신 전집中, 해남의 달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