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1965년 3월이었다. 나는 그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산이동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원래 수업을 맡지 않는데, 이 분은 수업에 자주 들어왔다.
 선생님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포근했고,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자같이 어린 아이들 앞에서 배꼽을 드러내고 산토끼 토끼야 하면서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는 동네사람들의 선한 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신기했던 일은 교감 선생님이 1학년 신입생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교정이든 마을 길이든 나를 볼 때마다 불러세우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의 담임선생님도 어디론가 총총히 걸어가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데, 교감 선생님은 줄곧 말을 걸어왔다.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시냐? 그림 열심히 그리느냐?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 어디갔다 오느냐? 방학때는 무엇하고 지냈느냐? 돌아보니 그것은 어린 생명에 대한 관심이요 사랑이었다.
 선생님이 무슨 훈화말씀을 전해준 기억은 없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오래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진정한 교육이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마음과 행동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가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도 여느 선생님들과 달랐다. 한번 학부모는 영원한 학부모로 예의를 갖추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나의 선친과 숙부의 회갑잔치에 오신 것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조문을 오셨다. 그는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제자와 학부모와 하나되어 살았던 진정한 교육자였다. 그는 해남에 다녀간 또 한 사람의 페스탈로치였다. 지금 우리 곁에도 페스탈로치 선생님이 많이 계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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