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으로 발생한 기후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의 대재앙뿐만 아니라 예측 불허의 폭염, 폭우, 대형 산불 등 우리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한다.
그러나 골목길을 걷다 문득 담장 너머로 주렁주렁 매달린 능소화의 풍성한 꽃송이와 마주치면 가슴이 확 트인다. 능소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꽃으로 7, 8, 9월 동안의 유난히 긴 개화기가 특징이다. 학명은 캄프시스 그랜디 플로라. 원산지는 중국으로 능소화과의 덩굴성 목본식물이다.
학명 캄프시스는 그리스어 ‘굽는다’라는 뜻으로 꽃 수술이 휘어진 모양 때문이다. 능소화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식물학자들도 정확히 알지 못하며 단지 꽃에 얽힌 동양적인 정서 때문에 우리 꽃이라고 부른다. 또 중국인지 조선인지 알 수 없지만 소화라는 궁녀의 넋이 꽃이 됐다는 슬픈 스토리와 내력이나 근거도 없이 양반 꽃이라는 속설 때문에 예전에는 양반이 아니면 집안에 심을 수도 없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덩굴 식물은 대부분 덩굴손을 이용해 기어오르며 자라지만 능소화는 튼실한 줄기를 스스로 꼬면서 성장한다. 그러다 마디에서 흡반이라고 부르는 뿌리가 돋아서 벽이나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른다.
봄이 되어 잎이 나기 시작하면 마주보며 자라는 큰 잎자루 마디에 다시 손가락 두 마디쯤의 작은 잎이 일곱 개 혹은 아홉 개가 달린다. 그리고 잎사귀 가장자리에는 톱니 같은 결각과 함께 보송보송한 털이 난다. 꽃과 줄기를 함께 감싸는 꽃받침은 연두빛과 노란색이 뒤섞여 있으며 꽃잎 끝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가느다란 나팔처럼 보인다.
그래서 바람이 불거나 비가 세차게 내리면 시계추마냥 흔들리고 이를 하염 없이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나팔소리에 침잠하게 된다.
또 하나는 낙엽성 식물은 여름에 무성했던 잎이 가을에 지고 나면 초라하고 쓸쓸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능소화는 굵은 밧줄 같은 회갈색 줄기에 세로로 벗겨진 모양새가 마치 고목처럼 기품이 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과 향기와 식용이나 의약품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또 저마다의 은밀한 언어로 사람에게 말을 걸어 꽃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보편적 언어로 바꾸어 놓는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흰색 꽃은 순결, 오렌지색은 처녀성, 붉은색은 열정적인 사랑, 녹색은 희망, 노란색은 결혼을 의미했으며 심지어 제비꽃은 과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동서는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아무튼 코로나19 팬데믹 재발과 더불어 무더위에 갇혀 사는 답답한 일상이 능소화로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