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사람들이 왜 저렇게 사는가?’ 거리에서 먹고사는 사람들,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작은 그릇을 앞에 놓고 엎드려 동전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정심에 앞서 고개가 갸우뚱해지곤 했다.  
내가 살던 동네 수원 지동의 재래시장 골목 초입에는 이런저런 행색의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달랑 야채 한 바구니를 놓고 앉았거나, 어물을 한 대야 정도 담아 파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파지를 줍는 노인들도 있다. 가진 것은 빈약하지만 자기의 힘으로 먹고살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들에게서 야채도 사고 생선도 산다. ‘사내가 뭐 이런 걸 들고 다니냐’고 집에서 야단을 들을지언정. 
그러나 동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동냥을 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노숙자들을 35년간 수원에 사는 동안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그들은 주로 아침 출근길에서 만날 수 있는데, 화성 성곽을 돌고 팔달산을 넘으면 대략 한 시간 반가량 소요되는데 이때에 마주치는 이들이 노숙자들이다. 
산책로 주변에서 아침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며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그들을 보게 되는데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그들의 일부는 산책객에게 손을 벌려 구걸을 해 그것으로 소주를 사서 마시는 것이었다. 산책객은 동전이나 지폐 한 장을 그들에게 주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사내 하나가 산을 오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태어나서 세면이라는 것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성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손이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후들거리며 떨렸다. 
“아침 식사는 하셨소?” 입술까지 떠는 그가 측은해 보였다. “아침 식사? 하! 무엇이면 어떻소. 그저 시간에 들어부을 소주 한 병이면 됩니다” 대꾸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서서 잠깐 생각에 젖었다. “세상에 무슨 한이 그렇게 많소. 한때는 잘나가던 사람이었던 것 같구려. 맞지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를 않았다. 그가 겪은 이전의 사연들이 구구절절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노숙자들에 대한 내 편견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요기나 하시오” 한 장의 지폐가 그의 삶을 다시 꽃피우게 하는 꽃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고액권 한 장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는 그제야 안도현 시인의 시구(詩句)를 떠올려보면서 절망의 늪에서 흐느적이는 이들도 한 때는 열기를 내뿜었으리라 깨닫게 됐다. 
인간은 다면체이다. 똑같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단조롭게 봐서는 안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보면서 오늘 고향의 어느 기관 면접관 심사위원장으로 다녀왔다. 나는 면접관으로 친절이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관심 가져주고, 배려해주며, 사랑해 주는 일인데… 
군청을 빠져나오면서 정작 그 친절이란 질문을 내게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말복이 지나고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찾아든다. 성찰과 사색하기 좋다는 가을이 기다려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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