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의 문화지수를 높이고자 지역문화 활력 촉진사업 일환으로 ‘해남, 마을에 문화를 피우다’ 공모사업에 필자가 사는 마을을 포함 49개 마을이 선정됐다. 우리마을은 주민 모두가 시인이 되는 ‘시인의 마을’로 응모했다. 새로운 길 찾기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주에는 최정수 이장과 제주도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는데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오랜 숙제를 안고 있다. 마을 앞 솔숲과 작은 해수욕장은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해변의 저녁노을과 자연의 숲을 둘러싼 문중과 마을주민 간 다툼은, 20년간의 법정 싸움으로 이어졌고 결국 마을 사람들은 문중에 패소했다. 이로 인해 마을주민들 간 잔치도, 두레와 품앗이도, 동네 어귀를 오고 가면서도, 서로 인사를 외면하는 세월이 현재진행형이다.
인송문학촌 토문재를 지으면서 이곳 마을에 대한 사연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던 터라, 인문학적 감성으로 어떻게 하면 주민들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역문화활력촉진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이를 통해 마을 동네에 벽화와 사진을 담고, 주민들이 쓴 시를 내걸며, 스토리가 있는 주민들의 소박한 마음을 담은 진솔한 이야기를 묶어내기로 했다. 한 장의 사진에 가족들만의 추억을 담고, 장수 사진을 찍어드리고, 송종리 방파제를 따라 소원을 담은 글을 바람개비에 실어 마을주민들에게 화해와 희망을 안겨드리고자 하는 꿈도 꾸었다.
문화지수를 높이는 데는 단시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어서 군지역의 특성을 살려 선택과 집중으로 문화 육성을 위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예산을 기대했지만, 군의 정책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폭을 확대해 주는 방향이었다. 문화는 다름과 차이가 있는 공기와 같아서 농어촌의 정서와 생활상들의 온도 차가 너무도 커서 의식과 사고의 틀이 뒤따르지 않으면 난해하고 어려운 일이다.
또 정보화 시대와 AI시대를 접한 현대사회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속도전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고리가 만만치 않다.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농어촌의 정서와 한계에 결과물을 얻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럼에도 60여 명의 마을 문지기 활동가들의 면면이, 지역문화를 꽃피우고자 하는 애향과 열의가 남달랐다.
제주도 선진 견학에서 폐가를 활용한 주민 참여형 프로젝트를 비롯해 지역주민과 예술가가 함께하는 공간 여러 곳을 찾았다.
특히 14세 전이수 아동작가의 글과 그림인 ‘엄마의 마음’은 큰 울림으로 내게 자리 잡았다. “지팡이로 땅을 툭툭 치면서 학교에 가는/ 시각장애인 형아와 그 모습을/ 한참을 뒤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어요./ 학교가 아니라 앞으로/ 그 형아가 혼자 걸어가야 할/ 인생길이라고 생각했을 때/ 엄마의 마음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인문학의 근본이 인간에 대한 배려와 나눔인데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의 정서에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일이 무모한 시험대를 만났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지혜가 부족한 필자가 주민들을 화해의 길로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미리 안다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마는 마주쳐야 하고, 대처하는 지혜와 자신감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다만, 당장의 물질적 풍요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문화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지역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미래도, 행복도 가질 수 없다는 신념이다. 가을은 결실을 보고 한껏 성숙해지는 계절이다. 고향의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추억이 있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송종리 문화마을, 시인의 마을이 벌써 그려진다. 주민들 간의 시기와 오해도 저 멀리 던져놓고 한가롭게 풀을 뜯고, 단정하게 정리된 텃밭에서 작물들을 풍성하게 자라게 하는 가족들의 모습처럼 사람 냄새 나는 인문학의 마을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