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표충사는 불교식 건물이 아니다. 영정을 모시고 유교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를 찾아갔다. 대사는 선조에게 약속했다. “전하. 저는 온 나라의 스님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분부만 내리시면 불러모아 왜적과 싸우겠습니다” 서산대사는 약속대로 승병 5,000을 이끌고 왜적과 싸웠다. 그리고 많은 공을 세웠다.
목숨을 잃은 스님들도 많았다. 나라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스님들의 용기와 희생은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는 내용이 표충사의 비석에 보인다. 그런데, 서산대사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표충사가 해남에 자리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대흥사는 3재가 들어올 수 없는 안전한 땅이니, 나의 유품을 모두 대흥사로 옮기라. 그리고 대흥사에서 나의 제사를 길이길이 지내도록 하라”는 서산대사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서산대사의 제자들은 해남으로 모여들었고, 작은 절이었던 대흥사는 조선 불교를 대표하는 큰 절로 변모했다.
서산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가 세워진 것은 서산대사가 세상을 떠나고 185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건물을 세울 때 전국의 절과 스님들이 나서서 비용을 보내왔다. 가까이는 합천 해인사, 멀리는 함경도에서도 비용을 보낸 기록이 있다. 표충사가 자리잡은 곳은 땅끝이었지만,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선 스님들의 용기와 희생은 조선불교 전체의 아이콘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
절 가까이에 있는 부도숲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대흥사의 빛나는 역사를 말해준다.(자료:불교사회연구소, 해남대흥사 표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