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박병두/인송문학촌 토문재 촌장

 

 도심 아파트에서 살던 때 일이었다, 현관의 벨이 울렸다. 한번, 두 번, 세 번… 연이어 벨은 울렸다. 계속해서 미친 듯이 울렸다. 우리는 얼떨떨해서 서로 마주 바라봤다.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벨은 제정신 없이 울렸다. 
“?” 반사적으로 엉거주춤 몸을 고쳐 앉은 후배를 보고, 현관 쪽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뭐예요?” 후배가 일어서면서 물었다. “가만 있어봐” 움직이려는 후배를 손으로 막았다. 내 집이므로 손님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아침 시간이다.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나는 시(詩) 얘기를 했었다. 후배가 써온 시들에 대해 내가 품평(品評)을 해줬고, 서정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그리고 전날 TV로 중계됐던 권투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매니 파퀴아어와 티모시 브래들리의 경기를 나도 재미있게 봤던 참이었다. 
“파퀴아어의 로드는 환상적이예요. 치고 빠지며 돌고, 또 완투 스트레이트에, 아 보기만 해도 기가 막혀요.” 
후배는 감탄을 연발했다. 그는 권투선수였다. 여러 해를 부지런히 권투를 했으나 챔피온이 되질 못했다. 그러다 에라, 시나 써봐야겠다, 하고 나에게 노트에 쓴 시들을 가져와 보여줬던 것이다. 그게 인연이 돼 정기적으로 만나게 됐다. 
자꾸 앞서려는 후배를 막아서며 현관문을 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팡이를 쳐들고 서 있던 앙상한 몰골의 노파였다. 그녀는 앙칼진 소리를 냈다. “왜 소리를 내는 거야! 시끄럽잖아!” 느닷없는 소리에 얼떨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를 낸다고 그러십니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딴전을 부리네! 밤새도록 이런 소리를 냈잖아!” 노파는 열어놓은 현관문을 주먹으로 치면서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노파는 구면이었다. 작년인가 베란다에 물방울이 떨어진다고 역시 아우성을 쳤던 때가 있었다. 
“알았습니다. 조사해 보고 그런 일이 없도록 조처하겠습니다” 어설픈 낮잠에서 깼던 터라 짜증이 났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치 마주칠 일이 아니었다. 잠깐 나는 곤혹스러워 머리를 숙이는데, 노파의 뒤쪽에서 사내의 소리가 났다. “소리를 내지마!” 노파의 뒤로 서너 걸음쯤에 삼십대 중반의 도토리처럼 생긴 녀석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노려보고 있었다. 완전히 시비조의 반말 지껄이었다. 
어이없어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쪽에 있던 후배가 소리를 질렀다. “너, 몇 살이냐?”, “개새끼!” 녀석은 노파의 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래층에서 자주 모자간에 싸우는 소리를 낸 녀석인 모양이었다. 녀석은 아예 죽기로 작정한 모양처럼 여겨졌다. “뭐야?” 성미가 급한 후배가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나는 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순간 나의 뇌를 스친 것은 살인이 난다 하는 것이었다. 조막만한 녀석에 비해 후배의 체격은 그 배나 되었고 주먹이 나가기 시작하면 십여 대가 순식간에 쏟아질 것이었다. 죽지 않으면 중상이었다. 안 될 일이었다. 
“참아야지” 나는 숨을 씩씩거리는 후배를 겨우 방에다 앉혀 놓고 말했다. 그리고 책상 곁의 의자를 바라봤다. 밤새워 글을 쓰느라 의자에 앉았던 게 원인인 모양이었다. 의자의 움직이는 소리가 아래층에 소음으로 들렸던 것 같았다.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새끼가…” 분이 풀리지 않는지 마냥 서성거리는 후배에게 나는 또 말했다. "참을 인(忍)이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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