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아·고아 보금자리
희망원·등대원 설립 70주년

해남복지는 민간에서 시작됐고 그 물꼬를 튼 인물이 희망원 김정길 이사장(사진 왼쪽)과 등대원을 설립한 이준묵 목사이다.
해남복지는 민간에서 시작됐고 그 물꼬를 튼 인물이 희망원 김정길 이사장(사진 왼쪽)과 등대원을 설립한 이준묵 목사이다.

 

 해방과 6·25를 겪었던 대한민국에는 공공 복지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당시 전쟁의 상흔은 해남도 비껴가지 못했다. 거리에는 부랑아들이 넘쳤고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고아들도 많았다. 이때 2명의 헌신적인 복지가가 나타났다. 
김정길 이사장과 이준묵 목사다. 이들은 해남에 최초 복지를 도입하며 해남의 복지사업의 한 획을 그었다.   
김정길 이사장은 부랑아들을 위해 희망원을, 이준묵 목사는 고아들을 위해 등대원을 1953년에 각각 설립한다.
따라서 1953년은 해남에 민간차원의 복지가 처음 시작된 해였다. 
이중 김정길 이사장은 1953년 해남고등학교 1학년 재학 당시 해남읍 다리 밑 하천가에 병들어 굶주리고 있던 지체장애자, 정신질환자, 노약자 등과 함께 가마니 50장으로 움막 10동을 짓고 희망원의 전신인 ‘천사회’란 간판을 내걸고 숙식을 함께했다. 
같은 시기 해남읍교회 이준묵 목사는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함께 해남YMCA 농장 건물 10평을 빌려 생활했다. 또 아이들과 산에서 땔감을 하고 농사를 지으며 전쟁 후의 궁핍함을 이어가다 1953년 등대원을 설립했다. 
희망원의 전신인 ‘천사회’를 만든 김정길 이사장은 또 이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읍내 시가지 청소에 나섰고 넝마통을 메고 거리에 앉아 구두를 닦아 생계를 꾸리는 등 자립의 기회와 삶의 가치를 일깨웠다.
밤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문맹인 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고 하천가 자갈땅 1000여 평을 직접 개간해 곡식을 심고, 닭과 오리, 염소 등을 길렀다. 30여년 간 정부의 도움없이 미인가 복지시설을 운영한 그는 1983년 부모의 유산과 자신의 자산으로 2만5,000여평 부지에 부랑인 보호시설인 희망원을 건립했다. 
희망원은 이후 정신요양시설인 신혜정신요양원, 노인전문요양시설인 선회노인요양원, 해남노인요양센터 등 다양한 복지사업으로 확대된다. 
이 같은 공로로 대통령 표창, 미국 세계평화봉사단의 세계평화상 열매상, 국민훈장 동백장, 법무부 장관 표창, 평등부부상 본상, 해남군민의 상 등을 수상했다. 
등대원을 설립한 이준묵 목사는 해남기독교청년회(YMCA)와 삼애농민학원, 천진어린이집 설립에 이어 해남고등공민학교, 호만고등기술학교, 해남읍교회 유치원, 해남수성경로대학을 열어 해남에 평생교육의 장을 열었다.
농민뿐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금융지원의 길도 열었다. 해남읍에 서민들을 위한 신용협동조합을 개설한 것이다. 
이같은 공로로 해남읍교회 교정에 이준묵 목사 공적비가 건립돼 있고 해남YMCA에 해암 이준묵 목사를 기리기 위한 해암관이 따로 있다. 
한편 해남등대원은 지난 3월6일 70주년 기념식을, 해남희망원은 오는 5월3일 설립 7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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