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천임식 해남5월 항쟁
유일한 사진 24장 남겨

 

 해남오월항쟁 관련 모습은 故천임식이가 남긴 사진이 유일하다. 그가 촬영한 사진으로 인해 해남의 오월항쟁 기록은 고스란히 남게 됐고 5·18해남민중항쟁사료편찬위원회(위원장 김종분)가 발간한「땅끝 해남에서 타오른 오월항쟁」에도 실리게 되면서 해남의 중요 역사자료가 됐다.
그가 남긴 24장의 사진에는 해남오월항쟁이 분출됐던 1980년 5월21일과 22일, 해남군청 앞에서 벌어진 시위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광주시위대에 의한 해남경찰서 무기탈환 모습과 구)교육청 앞에서 이뤄진 해남읍교회 여신도들의 김밥나눔, 대형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청년들, 무장한 시민군 등이 생생히 담겼다. 
그의 사진으로 인해 80년 당시 구)광주은행 터의 모습도 생생히 전해지고 있다.
이곳은 해남읍 해리에 지금의 버스터미널이 생기기 전 해남버스터미널 자리였고 이름은 금성여객 정류장이었다. 이곳엔 전남여객, 금성여객, 광성여객, 중앙여객 등 타지와 연결되는 버스들이 정거했고 고속버스 정류장도 겸했다. 주변에는 사법서사, 다방, 책방, 약국 등이 있었고 특히 해남군청과 경찰서, 교육청 등 모든 기관이 위치해 있었다. 천임식이 남긴 오월항쟁 사진에는 당시의 건물들과 경찰서, 교육청 등의 모습이 실려있다. 해남군청 인근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기록물인 것이다. 
평소 몸이 약했던 그는 냇가 징검다리 건너기도 버거웠을 만큼 아팠다고 한다. 그런데 종일 시위현장을 따라가며 촬영하자 군인들이 카메라를 빼앗고 그를 끌고 가려다 병약한 사람인지라 훈계해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사진협회 회원이었던 그는 평소에도 사진촬영을 즐겨했고 의식이 깨어있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각종 농민집회가 열릴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촬영했고 이를 건네주는 것을 즐겨했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천임식은 해남 5월항쟁 사진뿐 아니라 해남에 여러 업적을 남겼다.  
해남신협 이사장과 해남YMCA 이사장, 해남신문 전무이사를 역임했는데 모두 가장 어려울 때 맡은 직이었고 또 모두 성공시켰다.
‘해남의 5월’을 기록한 천임식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2004년 58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해남오월항쟁 사진으로 인해 해남오월항쟁은 진행형이 됐고 그 여운도 지속되고 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