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금/전 서울시 의원
민상금/전 서울시 의원

 

요즘은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짧은지. 5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TV에서는 일찍 온 무더위에 바닷가를 찾는 관광객의 모습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예전에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아름다운 별칭으로 높여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 유래가 노천명 시인의 <푸른 오월> 제2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인지 무색하고 부끄럽구나’

시인은 5월의 낭만을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언사들로 노래했지만 내 유년 시절의 5월은 결코 아름답지도 평안하지도 않았다. 
해마다 형체도 없는 보릿고개가 슬며시 찾아오면 나는 배고픈 쓸쓸함에 뻐꾸기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더욱 싫었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구분은 뚜렷했다. 꽃도 제각각 피고 지는 순서가 있었고, 모든 과일은 제철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봄인지 여름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가을인가 하면 곧 겨울이고, 모든 과일은 언제나 먹을 수 있다.
제철과 관계없이 모든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발달된 문명이 준 선물이다. 그러나 발달된 문명은 과일뿐 아니라 계절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개나리와 철쭉 개화시기가 같아지는 등 그 철, 그 시간대에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의 순서마저 바꿔 놓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5월도 여왕의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다. 5월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장미도, 푸르디 푸른 자연도 4월에게 양보하는 그런 날, 우린 자연의 변화를 목격하는 세대로 남을 것이다. 
여왕의 달인 5월은 가정의 달로 지정해 기념하는 날이 유난히 많다. 올해도 18개에 기념일이 있으며 특히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은 가족 간의 소중함을 기리고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을 보면서 머지않아 어버이날이 소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복제 기술과 체외수정으로 아빠가 필요 없고, 인공 자궁으로 엄마 없이도 태어난 아기에게 어버이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마이크로소프트의 챗 지피티와 구글 바드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친구는 플랫폼을 통해 안부를 묻고, 평판을 확인하고, 취미활동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며, 웹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말은 또 어떤 의미인지 신문을 읽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비단 나뿐만 아니라 6070 세대 모두가 느끼는 불안이요, 두려움일 것이다. 
다만 내가 지난 3년 4개월 동안 코로나 팬데믹 재앙을 이겨 내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의 소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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