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영 애
(군립도서관 땅끝독서회)

 

 1995년 중국 학계는 ‘외국인이 기록한 세계 3대 중국기행문’으로 금남  최부의 「표해록」을 꼽았다. 
일본 승려 엔닌의「입당구법순례행기」와 마르코 폴로의「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기행문의 하나로 꼽은 것이다.
북경대학교 거전자(葛振家) 교수는『표해록』에 대해 최고의 중국기행문이라고 평하면서 그 가치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했다. 
먼저 운명과 맞서 싸운 분투정신, 둘째는 국가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애국정신, 셋째는 환관이 발호하는 명대의 정치를 질타하는 비판정신을 들었다. 
표해록은 금남 최부 일행이 성종 19년인 1488년 1월3일 제주도에서 폭풍을 만나 중국 해안에 포착한 이후 조선으로 송환되기까지의 여정을 적은 일기체 기록문이다.
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 선생은 나주 태생이다. 그러나 해남정씨 사위가 되면서 해남과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으로 해남에 최초 시학의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그의 학문은 미암 유희춘, 석천 임억령, 고산 윤선도 등으로 이어져 이들로 인해 16세기 조선은 문학 르네상스를 꽃피운다. 해남 학문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금남 최부는 금강골 진입로에 위치한 해촌서원에 배향돼 있다.  최부의 학문은 당대 호남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는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중국의 역사와 문화, 문학작품까지 학식이 매우 풍부했고 시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태풍 때문에 중국에 표류하게 되지만 중국 절강성에서 북경까지 이르는 동안 만났던 관리들과 우정을 쌓았고 또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금남이 중국 절강성으로 표류하게 된 것은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도에 부임한 후 부친상을 당해 제주에서 고향 나주로 가다 풍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풍랑으로 중국 절강성 영파부 해안에 표착한 최부 일행은 온갖 고난을 겪지만 명나라의 호의로 북경과 요동, 의주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과정을 기록한 것이 표해록이며 성종의 명을 받아 저술한 기행문 형식의 글이다.
표해록에는 중국의 해로·기후·산천·도로·관부(官府)·고적·풍속·민요 등이 폭넓게 소개돼 있어 명나라 시기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주요 참고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표해록』에는 금남이 제주도로 가기 위해 화산면 관두량에 머물며 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표해록에는 관두량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타기 위해 40~50일 정도 바람을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이틀 만에 제주에 도착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는 순풍을 기다렸다가 배에 올랐는데 이는 바람을 이용한 돛단배로 제주 가는 뱃길이 험난했음을 보여준다. 표해록은 총 3권으로 구성돼 있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해양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일본에서 번역됐는데「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통속표해록(通俗漂海錄)」등으로 일컬어진다.
해남군립도서관 독서동아리에서 좀처럼 읽어보기 힘든 표해록을 같이 읽고 토론해 보는 매우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토론을 하면서 먼저 중세 해남에서 일찍이 중국을 기행하고 기록한 문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동아리 회원들은 우선 놀라워했다.
특히 한중 관계가 냉각되고 있는 시점에 중국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책으로 표해록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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