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 회장)
임일도(전)재광주해남군향우 회장)

 

최근 대법원은 “노조와 조합원 개인책임은 다르게 봐야 하므로 조합원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개별로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에 여당 당직자들은 집중 공격을 했고, 심지어 주심 대법관에 대해 인신공격까지 했다. 이러한 여당의 사법부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대법원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근거해 판결한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절차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해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대해 대통령의 잦은 재의요구권(일명 거부권) 행사이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서 재의한 결과 폐기됐고, 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도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여당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수결로 통과된 법률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자주 건의할 자세다. 물론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은 헌법 규정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에는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자주 사용하면 권력분립제도가 형해화(形骸化)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선거에 의해 선출됐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만, 국회도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됐기에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권력분립제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분립제도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각각 분리하고 독립된 별개의 국가기관들에 나눔으로서, 특정의 개인이나 집단에 국가권력이 집중되지 아니하도록 함은 물론, 권력 간에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권력분립제도는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을 지향하는 권력 그 자체와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인간들을 불신하는 사고가 사상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또한 국정운영에 능률을 증진하는 적극적 원리가 아니고, 권력의 남용이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기 위한 소극적 원리이며, 국가권력의 절대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권력 자체를 순화하고 중화시키는 중립적 원리이며, 정치집단 간에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균형의 원리이다.
우리나라 헌정사를 되돌아보면, 예외 없이 권력분립제도를 채택했으나 그 정도와 내용 그리고 현실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차이가 컸다. 
1948년 건국헌법은 집행부 우위의 권력분립제도였기에 집행부 수장인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하다 4.19혁명에 의해 정부는 무너지고 대통령은 망명을 가게 됐다. 
1960년 헌법은 비교적 균형형의 권력분립제를 규정했으나 5‧16군사쿠데타로 정착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1962년 헌법은 다시 집행부 우위의 권력분립제였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할 수 있었고, 1972년의 이른바 유신헌법은 집행부 절대적 우위형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말할 수 없이 시달렸고 결국은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맞아 사망, 막을 내렸다. 
1980년 헌법도 유신헌법보다는 덜했지만, 집행부 절대적 우위형의 헌법이었기 때문에 전두환의 독재정치가 행해졌다. 1987년 헌법 즉 현행헌법은 앞선 헌법들이 규정했던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의 권한을 확대, 강화했고,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해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8명의 대통령이 선출됐는데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각각 차이가 난다. 엄격하게 지킨 대통령도 있고, 그렇지 않고 집행부의 다른 권력, 예를 들어 경찰, 정보, 세무, 검찰 등을 악용해 집행부 절대우위를 꿰했던 대통령도 있다. 
누가 어떠했는지는 현명한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또한, 역사가 정확한 평가를 한다. 누구든지 이를 명심해 권력남용을 자제하고 권력분립제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