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사시합격 이끌어
박지원 후원회장도

박지원 전 원장이 12년간 자신의 후원회장을 맡은 故고기채 총장의 장지인 화원면 장춘마을 선영을 찾아 참배했다. 
박지원 전 원장이 12년간 자신의 후원회장을 맡은 故고기채 총장의 장지인 화원면 장춘마을 선영을 찾아 참배했다. 

 

 26세 청년 문재인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의 앞에 아무 곳도 놓인 것이 없었을 때 그를 대흥사로 이끌며 사법고시에 도전케 했고 이후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후원회장을 12년간 맡았던 고기채(화원면 장춘마을 출생) 여주대학교 총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경희대학교 4학년 때 총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았던 청년 문재인은 이때 경희대 학생지도과장을 맡고 있던 고기채 스승을 만난다. 
4년 장학생이었던 문재인은 학교의 기대주였고 고기채 스승은 학생운동에 열심인 제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알뜰히 챙겼다. 1975년, 유신정권을 반대했던 청년 문재인은 구속과 함께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돼 특전사에 배치된다. 
이후 그는 군대를 제대하지만 제적을 당한 상태라 학생 신분도 아니었고 여기에 아버지마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 49제를 지낸지 얼마안된 1978년 3월. 스승은 무작정 제자의 집으로 찾아와 청년 문재인을 대흥사로 이끈다. 당시는 사찰마다 살림이 어려워 고시생들의 하숙비로 근근이 살림을 이어갈 때다. 스승은 제자를 대흥사에 맡기면서 일체 외부 면회를 허락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떠난다. 
이후 청년은 복학에 이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노무현을 만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제자가 대통령으로 확정됐던 2017년 5월10일 고기채 총장은 공부도 잘했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품성도 좋았던 너무도 아낀 제자였다고 밝혔다.
또 제자를 대흥사로 데려간 이유에 대해 고향만큼 더 좋은 곳이 어디 있느냐며 특히 대흥사는 해남의 대표 사찰로 항상 가고 싶고 그리워했던 곳이었다고 답했다. 
고기채 총장과 제자 문재인과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지속됐다. 특히 제자 문재인은 큰일에 나설 때마다 스승에게 연락했고 스승은 언제나 그를 격려했다.  
스승인 고기채 총장은 이후 경희대 대학원장으로 정년퇴직한다. 고기채 총장은 목포 문태고 출신이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같은 동문이자 선후배 사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12년간 박지원 전 장관의 후원회장을 맡아 그를 물밑에서 지원했다.
그리고 2019년 여주대 총장에 취임해 최근까지 총장직을 수행했다.
박지원 전 원장은 고기채 총장의 사망 소식에 페이스북을 통해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라”고 했다.
그리고 박지원 전 원장은 지난 7월25일 고기채 총장의 장지인 화원면 장춘마을 선영을 직접 찾아 선배와 마지막을 조우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