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금/전 서울시 의원
민상금/전 서울시 의원

 

 출향인에게 40-50여년 전만해도 추석은 고향이요, 고향이 곧 추석이었다. 그때의 추석은 전날 서울역 광장의 구름처럼 많은 인파가 증명하고도 남는다.
추석만큼은 고향에서 온 가족이 부모님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다녀와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이는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모든 동물의 원초적 본능과 인간만의 고유한 조상숭배 사상이 결합해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시골에서 역귀향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추석을 연휴 가운데 하루쯤으로 가볍게 여기고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소멸할지 모를 고향이라도 찾아갈 곳이 없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 방역 때문에 거리두기와 비대면이라는 명분으로 만남을 금기시 했던 영향일 수도 있다. 전국의 228개 시‧군‧구 지자체 가운데 절반가량이 소멸위험 지역이다. 소멸위험지역이란 소멸위험지수(20-39세 미만의 여성인구수를 65세 이상의 인구수로 나눈 값)가 0.6%이하 지역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인구수가 매년 6만명씩 감소해 현재 5.100만 명에서 2070년에는 3,760만명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봄부터 전국의 농어촌지역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는 소멸위험지역 즉 사라지는 고향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고향은 몸이 더 잘 기억한다. 나는 유년시절 고향에서의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의 정취를 언제나 가슴 가득 안고 자랐다. 봄의 시작과 함께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 먼 산의 뻐꾹새 소리, 꿩소리, 해질녁 황소의 느긋한 울음소리, 자운영 꽃과 꿀벌, 여름날의 매미소리와 밤에는 반딧불이 또 원두막. 아마 요즘 아이들은 원두막이 어떤 모습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을 미리 알리는 고추잠자리 떼의 비행, 누렇게 익은 논둑길을 걷노라면 뛰어 오르던 메뚜기떼.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놓은 까치밥의 의미를 어떻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도 눈 감으면 이런저런 백색소음과 함께 고향의 골목길을 걷는다. 출향인에게 성장은 때 묻지 않는 순진함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 밀어낸다. 변화는 철들지 않은 어린 나이의 순수로 돌아갈 수 없음을 뜻한다.
얼마 전 강동구 둔촌동 아파트 단지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세칭 MZ세대들이 모여 ‘안녕 둔촌아파트’라고 쓴 현수막을 걸어놓고 각자의 추억을 사진과 글로 남긴 동명의 책 ‘봉헌식’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니 요즘 같은 세상에 기억 할 수 있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해남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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