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다인회의 첫 출발은 1966년 12월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차를 즐기던 인사들이 모여 해남화훼클럽을 결성한 것이 기원이 됐고, 1979년 1월 지역단위 차회로는 전국 최초로 해남다인회가 창립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2년 8월29일에는 차 문화의 증흥조 초의선사의 차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전국규모의 차 축제를 계획하고 제1회 초의문화제를 개최, 대흥사와 공동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다. 또 초의문화제 기념사업으로 초의 전집인 제1집 다론, 제2집 선론, 제3.4집 시론, 제5집 여록순으로 매년 발간했으며, 제1집 다론은 전국 차인회의 학습교재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해남 차문화 역사가 기록된 「해남의 차문화」는 10여개월의 산고 끝에 2008년 2월 발간됐다.
이어 2015년부터 차문화의 저변확대와 인재 양성을 위해 차 관련 학과가 설치된 전국 70여개 대학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차문화 발전 논문공모전을 매년 개최해 전국 차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2019년에는 해남 차문화 확산을 위해 해남다도대학을 설립, 1년과정으로 현재 6기생이 교육 중이고 5기까지 8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우리나라 차인들은 매년 5월25일을 차의 날로 정해 생일잔치를 열고 있는데, 금년 제43회 차의날 기념식은 경상남도 하동에서 개최된 세계차 엑스포 행사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세계 9개 나라의 선고다인 중 차문화 발전에 공이 많은 100인을 선정해 헌다례를 올렸으며, 이 100인 중에서 우리나라 선고다인이 70인이고 그중 해남 출신이 자랑스럽게도 무려 다섯분이나 된다.
첫번째 분은 다성 초의선사(1786~1866)이다. 선사는 일지암에 주석하며 격조높은 초의차를 만드시고 동다송. 다신전 등 수 많은 다서를 저술, 쇠퇴일로에 있던 조선조 후기 우리나라 차문화를 중흥시켰다. 두 번째 분은 응송스님(1892~1990)이다. 스님은 17세에 대흥사로 출가 후 여러해 동안 주지를 지내시면서 초의선사의 다법을 전수받아 후대에 계승하고 선사의 유품을 수습하는 등 공을 세웠다.
나머지 세분은 자랑스럽게도 해남다인회 출신이다. 한학자이신 창강 김두만(1909~2001) 선생은 태평양화학의 요청으로 동다송과 다신전을 번역해 우리나라 최초 차 박물관인 태평양화학 차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행촌 김제현(1926~2000) 원장은 해남다인회 창립 때부터 2000년 4월 작고하실 때까지 21년간 해남다인회장과 초의문화제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며 차문화 발전을 위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끝으로 극작가인 우록 김봉호(1924~2003)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 차 전문지 다원을 발간하고 ‘차인들은 차를 선이라 하네’ 등의 수많은 다시를 남겼으며, 일지암 복원 시에는 추진위원장직을 맡아 신고 있던 등산화가 다 닳아질 때까지 일지암 터를 오르내리며 지금의 일지암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상과 같이 해남출신 다섯분의 선고다인 행적을 간단히 소개해드리면서 앞으로 해남다인회와 초의문화제는 훌륭하신 선배님들의 공적을 이어가고 우리나라 차문화가 보다 더 성숙하게 발전될 수 있도록 열과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남기면서 이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