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교사 원상철 선생의 회고록 「나의 학교」를 읽었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한 교사의 삶을 한 땀 한 땀 수놓은 책이다. 밤새워 책을 읽어 내려간 나는 이렇게 외쳤다.
 “왔다! 징하게 인간적인 선생님이었네!”그가 목포상고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밤늦게 간식을 사들고 농구부를 가끔 방문했는데, 키가 2미터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수학선생인 그가 아예 농구부 감독을 맡아버렸다. 누구보다 정이 많은 원선생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해남 옥천중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송용복, 정기태 선생님과 함께 밤 10시까지 학생들의 독선생이 돼주었다. 
 밤이 깊어지면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자가용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원 선생은 목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해남과 인연이 매우 깊다. 부친 원양수님의 고향은 산이면 초두리다. 조부님은 상공리에 교회도 세우셨다. 
 원 선생이 평생의 반려를 만난 곳도 산이면이다. 1981년 봄에 원 선생은 산이중학교에서, 박혜련 사모님은 코 앞에 있는 산이중앙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디딘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원 선생이 첫 담임을 맡았던 산이중 15회 제자들은 평생 친구가 돼버렸다. 명예졸업생 대우를 받으면서 40년이 넘도록 제자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원 선생도 기금을 출연하는 장학회는 ‘단아(원상철 선생의 호)15 장학회’다.
 단아 선생과 산이중 15회 졸업생들이 함께 만든 장학회. 선생은 정이 든 사람들을 놓치는 법이 없다. 산이면에서 만난 교사들끼리 만든 ‘산이계’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된지 오래다. 이 아름다운 전통은 2세들이 만든 ‘리틀 산이계’로 바통이 이어지고 있다.  「나의 학교」는 원 선생이 동료ㆍ제자들과 함께 만든 모임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끝으로 통일부에 원선생을 남북통일자문위원으로 임명해 줄 것을 건의한다. 사람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단단히 묶어내는 능력을 가진 원상철 선생이라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묘책도 찾아내지 않을까?
(37회 해남이야기 : 나의 형 김남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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